굴/배중진
집에 가고 싶었는데
우리의 고향까지 가는 완행열차는
한참 기다려야 한다
그것도 하루에 두, 세번 뿐이다
통학생으로써 애매하게 끝이 난 시간
중학교 1학년 짜리는 나이가 몇 살 더 먹은
친구의 뒤를 졸래졸래 따라 겁도 없이
화물열차에 숨어 탓다
우리의 바램도 허사로
이 화물열차는 한 정거장 더 가서 멈췄고
우린 다시 고향역을 향해 뛰다시피 했는데
아뿔사 굴이 앞에 떡 아가리를 벌리고 버티고 서 있었다
돌아서 가야 마땅했다
그 까마득한 고갯길을 삥 둘러 올라 가야만 했는데
앞에가던 친구가 선뜻 굴속으로 사라졌다
더 생각도 못하고 따라 들어 갔던 지옥 속
언제 급행열차가 달려들어 올까
식은땀과 불안으로 이렇게 후회를 했던 기억이 또 있었을까
달리고 또 달려 보지만 미끈거리기만 하고 숨만 헐떡인다
굴안에는 대피소도 있었는데 그런것 있는지도 몰랐다
죽기 살기로 달려서 빠져 나오니
급행열차가 빠앙하면서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 살았구나
어찌 생명을 가지고 도박도 아닌 장난 속으로 밀쳤었는지
그땐 그 누구도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밤마다 악몽을 꾸고 또 꾸었으며 고함을 치다가
한 밤중에 벌떡벌떡 일어나곤 했었다
검은 지옥이 보였고 굴속으로 치달리곤 했다
무섭게 질주하는 검은 연기의 증기기관차가 덮쳐오고
옴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으며 식은 땀만 나왔다
아직도 그 악몽은 사라지지 않았고
가끔가다 지금도 달려들어 모든것을 까맣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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