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8

높은 나무에 올라간다는 것/배 중진

배중진 2018. 4. 6. 00:46

높은 나무에 올라간다는 것/배 중진


인간에게 해를 주는 것도 아닌

아프리카의 멧돼지가

굴 밖으로 나오자마자


호시탐탐 노리던 표범이

날쌔게 덮쳐와

목이 콱 막히게 물어 제껴

멱따는 소리를 내지르며 도움을 청해도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더니


설상가상으로

초원 저 멀리서 비명을 듣고

지저분하고 추잡한 하이에나가

낄낄거리며 다가와선

항문 쪽과 성기를 물어뜯어

처절한 모습이다


걸려도 된통 걸렸고

빠져나갈 방법이 전혀 없으며

고통 없이 죽여주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인데

오랫동안 발버둥 쳐야만 하는 운명이었고


그때까지 산멱통을 물고 있느라 허기진 표범은

하이에나가 엄청난 뱃속을 다 채우고 물러나서야

축 늘어져 흐늘거리는 멧돼지의 몸체를 질질 끌다

날쌔게 나무 위로 올라가더라


멧돼지는 죽어서야 높은 곳에 올라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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