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배 중진
죽이고 죽임을 당하고
평화와 자유가 유린당하고
인권이 땅에 곤두박질치고
재산권은 총칼을 거머쥔 자에게 있고
어린아이들의 생명이 보장되지 못하고
여인의 순결이 내동댕이쳐지고
어르신들의 노후는 안중에도 없고
같은 민족이 처절히 아귀다툼을 벌이니
철교는 끊어지고
굴은 폭파되었으며
공장은 불타고
도로는 막히고 패였다
끝도 없는 피난민 행렬
밀리고 미는 삼 년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금수강산
강물도 핏빛으로 변했으나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적화통일을 꿈꾸는 살인마 집단
하는 짓거리마다 평화를 위협하니
어찌 형제라 칭할 수 있겠나
정신무장이 느슨한 우리 후손들
하늘에 계시는 호국 영령께 부끄럽고
세계 유일한 동족 분단국가로
단군 자손이라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한민족의 앞날을 위해서는 평화통일이요
자손 번영을 이루기 위하여 힘을 합치고
민주주의의 높은 깃발 아래에서 평등하며
세계를 힘껏 이끌고 나아가야 하지 않겠나
방긋^^
백합도 피어났네요 꽃들이 너무 너무 예뻐요
온세상에 평화만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
깊은 인연으로 서로 인사 나눌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소통의 창구로 사용되기도 하며
이웃이 되어 서로 안위를 걱정하고 좋은 친구가 되어가고
있음을 알게 하는 좁은 공간이지만 넓은 사회이기도 하지요.
멋진 블로깅을 하시기 바랍니다.
어릴적 학교에 다닐때에는 6.25 노래를 부르고, 각종 행사를 하곤 하였는데
요즈음은 기억조차 희미하게 잊혀져 가는것 같아요.
" 아~아~잊으랴 어찌우리 이날을~"
생각지도 않게 일이 어긋나기 시작하셨군요. 좋은 결말이
있으셨으면 합니다. 저도 서부 여행 시 후버댐을 봤으면 했는데
한국교포가 운영하는 관광업체가 한국인을 단체여행시키면서
길이 막혔다는 핑계로 우회하는 바람에 두고두고 후회하게 하였지요.
뉴욕은 어제 소나기가 여러 차례 퍼붓고는 지금은 춥습니다.
멋진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1974년 8월부터 1977년 7월까지 3년동안
서부전선 최전방에서 철책근무하면서
저들과 가장 근접한 거리에서
뜬밤을 지새웠던 지난시절이 생각납니다
다시는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가슴아픈 전쟁은 절대 없어야 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시고 날마다 승리하시길---
나그넷길에 사랑의 동행자가 영원하게 같이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도 했지요. 모든 것을 떠나 순수하게
서로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한눈팔지도
않고 상대를 아프게도 하지 않는 아름답고 건강한 모습을
그려봅니다. 멋진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뉴욕은 비가
온 후 추운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답니다.
수자원이 풍부해 보입니다. 가뭄 걱정 없이 잘 자랐으면 합니다.
옛날 모내기 때마다 약간씩 거들던 생각이 납니다. 바가지에다
먹는 밥이 그렇게 맛이 있을 수가 없었지요. 힘이 드시겠지만
현대에는 기계가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 참 다행이기도 하지요.
멋진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겨울을 견디고 저렇게 익어가는 모습이 신기하고
우리 선조에게는 삶의 고비였지요. 빨리 수확을
하여야만 하는 배고픈 시절에 보리나 밀이 없었다면
어떻게 지내셨을까 궁금도 했답니다. 수확을 마쳤나요?
이곳에선 멀리 나가야 만나기에 시간개념이 없어졌습니다.ㅎㅎ
시원한 뉴욕입니다. 멋진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으로 작은 마음의 창문을 열면 넓은 세상이 들어온다는 말씀이 좋습니다.
모든 게 아름답게 보이고 다툴 일이 없겠지요. 멋진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그리웠던 삼십년 세월
의지할 곳 없는 이몸 서러워하며 그 얼마나 울었던가요
우리 형제 이제라도 다시 만나서 못다한 정 나누는데
어머님 아버님 그 어디에 계십니까 목메이게 불러봅니다
내일일까 모레일까 기다린것이 눈물맺힌 삼십년 세월
고향 잃은 이신세를 서러워하며 그 얼마나 울었던가요
우리 남매 이제라도 다시 만나서 못다한 정 나누는데
어머님 아버님 그어디에 계십니까 목메이게 불러봅니다
잃어버린 30년-Gasazip님
모르는 곡도 있어 검색도 해봤답니다. 멋진 음악에 우리 민족의 애환이 담겨있어
폐부를 찌르지요. 멋진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눈물 젖은 두만강/김정구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배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던 그 배는 어디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강물도 달밤이면 목메여 우는데
님 잃은 이 사람도 한숨을 쉬니
추억에 목 메인 애달픈 하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님 가신 이 언덕에 단풍이 물들고
눈물진 두만강에 밤새가 울면
떠나간 옛님이 보고싶구려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원로 가수 김정구 씨가 수도경비사에서 복무할 때 위문공연을 오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옆에서 수영하시고 계셨는데도 몰랐었답니다.
아주 가까운 거리였지만 인사도 못하고 개헤엄 치시는 것을 보았답니다.ㅎㅎ
주위에 사람도 없이 팔을 뻗으면 닿을만한 짧은 거리였지요.
송추유원지 근처에 수경사에서 장병들을 위해 특별지역을 만들었지요.
《이 노래는 30년대 중엽 중국 동북지방을 순회공연중이던 류랑극단 예원좌(藝苑座)의
작곡가 이시우(李時雨) 씨가 길림 도문의 한 려관에 머물 때 만든 작품이다.
1935년 어느날, 작곡가가 려관 뒤마당에 서있는 단풍나무 두그루를 보며 고향생각에 잠겨있는데
려관집 주인이 그 나무는 자신이 두만강을 건너올 때 고향에서 떠가지고와 1919년에 심은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추억>이라는 주제로 곡을 구상하며 잠을 못 이루던 그날밤, 어디선가 비통하고 처절한
녀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다음날 사연을 알아보니 독립군인 남편이 일제경찰에 잡혀 총살되였는데
그날이 바로 희생된 남편의 생일날이였다는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후 두만강 기슭에 나간 작곡가의 눈에는 두만강의 물결이 나라 잃고 헤매는 우리 민족의
피눈물처럼 보였다. 현지에서 만난 문학청년 한명천에게 이 사연을 이야기해주자 그가 즉흥적으로
가사를 썼고 작곡가도 즉시 곡을 붙였다.
이렇게 창작된 노래를 극단의 장월성이라는 소녀배우를 시켜 공연 막간에 부르도록 했는데 관중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후 순회공연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작곡가는 시인 김용호에게 부탁해
가사를 다듬고 선률을 완성해 가수 김정구의 노래로 1937년 OK레코드사를 통해 취입하게 됐다.
결국 레코드에는 작사자가 김용호로 올라있지만 이 노래 작사는 한명천 원작, 김용호 개작,
그리고 작곡은 이시우가 정확한것이다.》
이어서 잡지는 또한 《눈물 젖은 두만강》 이 노래를 일제 강점기에 나온 《계몽기가요》중 대표곡으로
꼽고있으며 《광복전 우리 인민들의 피눈물 나는 력사를 반영한 노래》로서
《나라 잃은 우리 민족의 울분과 침략자들에 대한 항거의 감정, 민족의 고유한 정서를 담고있기때문에
사람들속에서 잊혀지지 않고 불리고있다.》고 소개했다.
이 노래의 주인공은 독립투사 문창학의 부인 김증손녀(당시30세)이다. 독립투사 문창학은
조선 함경북도 온성군 미포면 출신으로 상해림시정부 교통총장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12월에
체포되여 1923년 12월 20일 서울서대문형무소에 압송된후 41세에 사형당하였다. 그녀는 당시
독립운동에 참가한 남편을 찾아 중국땅 어디나 독립군이 있다는 곳이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찾아다녔다. 도문에 와서야 남편이 이미 희생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하늘이 무너져내리는것 같아 머무르던 려관방에서 원망과 슬픔에 밤새도록 목놓아 통곡을 하였다.
이 녀인의 사연이 시인과 작곡가에 의해 오선지에 담겨졌는데 바로 불멸의 명곡 《눈물 젖은 두만강》,
이 노래이다.
기고인, 시인 석화
길림신문에서 발췌
'도문'은 두만강의 중국식 표기이지요. 백두산을 가면서 들렸던 곳인데~~~~~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중국과 북한이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니...
해란강도 생각보단 훨씬 좁았지요..
넋이 있으시다면
잿더미에서 일궈낸 한국의 얼을 보시면서
숭고한 죽음이 값지게 잘사는 현실로 나타나 다행이라 여기시고
넋이 있으시다면
알지도 못하는 동방의 작은 땅에서 평화를 위협하던 공산주의 침략을
막으려고 하신 임의 뜻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시옵소서
넋이 있으시다면
아직도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음에 분노하시고
평화통일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고
넋이 있으시다면
고국 하늘 아래 사랑하는 가족 곁으로 가시지 못한 안타까운 희생정신에 보답 코 져
오늘도 열심히 민주화 나무를 심는 갸륵한 마음을 보시고
넋이 있으시다면
조그마한 대한민국에 명실공히 자유와 평화 그리고 통일된 모습을
보여 드리오리라 약속하나이다
장독대 근처에 피었던 채송화를 잊을 수 없었답니다.
마당 가에 있었던 봉선화와 백일홍 잘하면 맨드라미도
볼 수 있었던 옛날이었지요. 멋진 사진 감사합니다.
시원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평등을 외치며 똑같이 배급을 주고받는다면 왜 남보다 일을 더 하고
잘 살아보려고 바동거릴까요. 아마도 축생이 따로 없을 겁니다. 요사이는
가축도 방목하는 곳이 많지요. 그들의 주장이 옳게 펼쳐질지 궁금하기도
한 한국의 정치현상이군요. 내 것, 네 것이 없이 우리 것이라면 만족하며
무소유의 삶이 될까요? 그것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합니다.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하는 답답한 마음이지요. 시원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명문 소르본대가 파리4대학으로 바뀐 뒤
저 거대한 중공에서 13살짜리를 투입한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도 목숨과 바꿀 수 있다는 무지를
수수방관하는 어른들이 있었던 나라였기에 이웃을 무자비하게
침공할 수도 있었겠지요. 우리의 평화통일을 원치 않는 나라가
이웃에 있음을 한탄합니다. 시원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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