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09

니가 죽다니!/배중진

배중진 2011. 3. 16. 07:04

니가 죽다니!/배중진

때 아니게 먼저 가는것들이 있다. 곤충이고 동물이고 심지어 인간까지도 예기치 않은 시간에
우리곁을 일찍 하직하여 남은이들을 숙연케하며 아쉽게 하고 울부짖게도 한다.
죄를 떠나서 인간지사라 생각한다.

부모입장에서, 전우의 신분으로, 가족의 차원에서 느낌이 다르리라.

1978년 제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사격도 끝이나고 그야말로 별 볼일없는 병장으로써
제대후의 일들을 예상해서 천자문을 또 본다거나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며 앞으로의 삶을
차분히 준비하고 있는데 갓 입대한 이병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여 경비를 서기위해
용산 단본부로 내려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포대에서 중장비를 하역하다가 쏠리면서
벽에 머리가 끼어 역전의 월남참전 선임하사의 품에서 차갑게 식어갔다고 했다.
급한김에 셔츠를 찢어 뿜어나오는 피를 막아 보았지만 불가항력이었단다.

옆에 있는 용산병원에서도 분출하는 피를 막지 못하고 링겔로 오히려 압력이 올라가 물방울을
내며 그의 삶은 허망하게 끝이났다. 대화를 나누어 본것도 아니고 기억은 없지만 슬쩍
지나친 인연은 있었다. 포대대항 운동을 마치고 막 올라와서 여장을 풀기도 전에 또 외박증을
끊어 단본부로 내려 갔다. 어찌 국군 수도 통합병원까지 갔는지 기억도 없고 소대의
선임하사들이 퇴근도 하지 못하고 우리와 밤을 지새우게 생겼다. 가족에게도 연락을 취했고
우리 앞에 놓여 있는것은 소주만 남아 있었다. 무기가 될만한 것들은 다 치워 놓아 멱살을
잡기전에는 시체 냉동실은 적막 그 자체였다. 우린 가족들의 폭력에 그저 수도경비사의
방패가 되어 주어야만 했다. 우려와는 달리 그의 가족들이 밤늦게 도착하여 시체를 보고
싶다고 하여 확인 시켰으며 그의 어머니는 아직도 피가 맺혀있는 입술을 맞추고 쓰다듬고
붙잡고 너무 기가막힌지 울음도 터트리지 않고 곁을 떠나지 않고 온밤을 지새웠다.

모든것을 우선으로 배려하고 긴밤을 지새우고 있는데 전방 또는 인근 부대에서 실려 오는
또 다른 피해자들은 간단히 운전병만 오는 사례에 비교하면 우리는 서울에 있으면서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는 생각도 하였다. 그들이 하는 소리는 전국에서 뽑히고 또 뽑혀서
수도경비사에 근무하니 자부심을 가지라고 했는데 이것이 자부심일까?

다음날 우린 벽제로 향했다. 대형버스에 포대장찝차에 또 몇대가 더 뒤를 따랐다.
가족들은 조용했고 얼마나 안타까울까? 싱싱한 육체가 주검이 되어 또 다시 화장터로
향하고 있으니 꿈이길 제발 바랬으리라.

식을 거행하고 돈을 내려 놓고 간단히 제를 지낸다음 검은 복장의 일꾼들이 이끄는대로
순서를 밟았는데 머리에는 포마드를 발랐는지 기름기가 지겹도록 까만 사람들이 수북히
쌓여있는 돈을 긁어 모아 반으로 접어 뒷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다 끝이났고 기다리란다.

알기로는 22개의 로가 있었던듯하고 둥그런 복도를 통해 연결되어 있었다. 물론 옆
로에서도 활활 타 가고 있었다. 둥둥거리는 소리가 지독히도 싫어 밖으로 나오는데
고약한 사람들이 얘기하는것을 듣고는 경악을 했는데...

젊은 아주머니 한분이 땅을 치며 통곡을 하고 있었다."아이고, 니가 죽다니..엉,엉,엉"
하시면서 울고 있는데 지나가는 두 녀석이 "ㅆㅍ! 곡조맞춰 잘도 울고 있네.."
기가막혔고 왜 그들을 그냥 보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손을 좀 봤어야 했는데...

우린 2시간 이상을 술 마시면서 기다렸다. 그 사병의 동생을 붙잡고 형몫까지 살아야
한다고 훈시까지 하면서..동생이 곱게빤 유골을 앞에 부둥켜 앉고 우린 자대로 돌아와야
했는데 소변이 급하다고 버스를 세우라고 했건만 듣지않아 그대로 실례를 했다.
오줌은 뒤부터 시작해서 앞까지 흘러갔고 선임하사는 "너! 이제 죽었어 , 자대가서 보자!"

보긴 뭘봐? 말못하는 사병이지만 동료가 죽어 가루가 되어 나왔는데 그까짓 주먹이 뭐가
대수인가?

나는 X-mas때 되지도 않는 카드를 그려 포대원들에게 팔았고 그 얼마 되지않는 금액을
가족들에게 넘겨 주도록 했다. 몇개월 조사를 받고 그 일병은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영광(?)을 가져 다른 병사들이 참석했단다. 파워가 있는 군대라서 실수를 미화 장교들
다치지 않고 잘 마무리한듯 했다.

뒤늦게 그 사병의 명복을 빌며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자랑스런 대한의 남아로 태어나
남들이 다 하는 국방의무
먼장래를 위해 인생공부하러 떠난다

참고 견디며 강한 정신력을 키워
부모님 속을 조금 이해하고, 사랑을 알고
나라를 공산국가의 위협에서 지키는 기회를 갖는다

뭘 알지도 못하는 이등병
아차하는 순간 불귀의 객이 되어
사랑하는 부모형제 뒤로하고 서둘러서 간다

서러움도 아쉬움도 고통도
사랑도 저버린 채
꽃다운 나이로 짧게살다 홀로 간다

어이 갈거나
우리 부모 누가 돌보라고
억울해서 어이 갈거나

 

2016.09.18 07:10

8/17/2009 5:11 PM

때 아니게 먼저 가는것들이 있다. 곤충이고 동물이고 심지어 인간까지도
예기치 않은 시간에 우리곁을 일찍 하직하여 남은이들을 숙연케하며
아쉽게 하고 울부짖게도 한다.
죄를 떠나서 인간지사라 생각한다.

부모입장에서, 전우의 신분으로, 가족의 차원에서 느낌이 다르리라.

1978년 제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사격도 끝이나고 그야말로 별
볼일없는 병장으로써 제대후의 일들을 예상해서 천자문을 또 본다거나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며 앞으로의 삶을 차분히 준비하고 있는데 갓
입대한 이병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여 경비를 서기위해 용산 단본부로
내려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포대에서 중장비를 하역하다가 쏠리면서
벽에 머리가 끼어 역전의 월남참전 선임하사의 품에서 차갑게 식어
갔다고 했다. 급한김에 셔츠를 찢어 뿜어나오는 피를 막아 보았지만
불가항력이었단다.

옆에 있는 용산병원에서도 분출하는 피를 막지 못하고 링겔로 오히려
압력이 올라가 물방울을 내며 그의 삶은 허망하게 끝이났다. 대화를
나누어 본것도 아니고 기억은 없지만 슬쩍 지나친 인연은 있었다.
포대대항 운동을 마치고 막 올라와서 여장을 풀기도 전에 또 외박증을
끊어 단본부로 내려 갔다. 어찌 국군 수도 통합병원까지 갔는지 기억도
없고 소대의 선임하사들이 퇴근도 하지 못하고 우리와 밤을 지새우게
생겼다. 가족에게도 연락을 취했고 우리 앞에 놓여 있는것은 소주병만
남아 있었다. 무기가 될만한 것들은 다 치워 놓아 멱살을 잡기전에는
시체 냉동실은 적막 그 자체였다. 우린 가족들의 폭력에 그저
수도경비사의 방패가 되어 주어야만 했다.
우려와는 달리 그의 가족들이 밤늦게 도착하여 시체를 보고 싶다고
하여 확인 시켰으며 그의 어머니는 아직도 피가 맺혀있는 입술을 맞추고
쓰다듬고 붙잡고 너무 기가막힌지 울음도 터트리지 않고 곁을 떠나지
않고 온밤을 지새웠다.

모든것을 우선으로 배려하고 긴밤을 지새우고 있는데 전방 또는 인근
부대에서 실려 오는 또 다른 피해자들은 간단히 운전병만 오는 사례에
비교하면 우리는 서울에 있으면서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는 생각도 하였다.
그들이 하는 소리는 전국에서 뽑히고 또 뽑혀서 수도경비사에 근무하니
자부심을 가지라고 했는데 이것이 자부심일까?

다음날 우린 벽제로 향했다. 대형버스에 포대장찝차에 또 몇대가 더 뒤를
따랐다. 가족들은 조용했고 얼마나 안타까울까? 싱싱한 육체가 주검이
되어 또 다시 화장터로 향하고 있으니 꿈이길 제발 바랬으리라.

식을 거행하고 돈을 내려 놓고 간단히 제를 지낸다음 검은 복장의 일꾼들이
이끄는대로 순서를 밟았는데 머리에는 포마드를 발랐는지 기름기가
지겹도록 까만 사람들이 수북히 쌓여있는 돈을 긁어 모아 반으로 접어
뒷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다 끝이났고 기다리란다.

알기로는 22개의 로가 있었던듯하고 둥그런 복도를 통해 연결되어 있었다.
물론 옆 로에서도 활활 타 가고 있었다. 둥둥거리는 소리가 지독히도 싫어
밖으로 나오는데 고약한 사람들이 얘기하는것을 듣고는 경악을 했는데...

젊은 아주머니 한분이 땅을 치며 통곡을 하고 있었다."아이고, 니가 죽다니..
엉,엉,엉"하시면서 울고 있는데 지나가는 두 녀석이 "ㅆㅍ! 곡조맞춰 잘도
울고 있네.." 기가막혔고 왜 그들을 그냥 보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손을 좀 봤어야 했는데...

우린 2시간 이상을 술 마시면서 기다렸다. 그 사병의 동생을 붙잡고
형몫까지 살아야 한다고 훈시까지 하면서..동생이 곱게빤 유골을 앞에
부둥켜 앉고 우린 자대로 돌아와야 했는데 소변이 급하다고 버스를
세우라고 했건만 듣지않아 그대로 실례를 했다.
오줌은 뒤부터 시작해서 앞까지 흘러갔고 선임하사는 "너! 이제 죽었어,
자대가서 보자!"

보긴 뭘봐? 말못하는 사병이지만 동료가 죽어 가루가 되어 나왔는데
그까짓 주먹이 뭐가 대수인가?

나는 X-mas때 되지도 않는 카드를 그려 포대원들에게 팔았고 그 얼마
되지않는 금액을 가족들에게 넘겨 주도록 했다. 몇개월 조사를 받고 그
일병은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영광(?)을 가져 다른 병사들이 참석했단다.
파워가 있는 군대라서 실수를 미화 장교들 다치지 않고 잘 마무리한듯 했다.

뒤늦게 그 사병의 명복을 빌며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자랑스런 대한의 남아로 태어나
남들이 다 하는 국방의무
먼장래를 위해 인생공부하러 떠난다

참고 견디며 강한 정신력을 키워
부모님 속을 조금 이해하고, 사랑을 알고
나라를 공산국가의 위협에서 지키는 기회를 갖는다

뭘 알지도 못하는 이등병
아차하는 순간 불귀의 객이 되어
사랑하는 부모형제 뒤로하고 서둘러서 간다

서러움도 아쉬움도 고통도
사랑도 저버린 채
꽃다운 나이로 짧게살다 홀로 간다

어이 갈거나
우리 부모 누가 돌보라고
억울해서 어이 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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