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 하늘의 제비/배 중진
높고 푸른 가을의 동쪽 하늘에
날렵하게 치솟는 제비를 신호로
우리들의 운동회는 시작되었고
우리 1, 600명 아이들은 해맑았으며
온 가족, 한동네, 면 소재지가 축제분위기로
서로 너무 잘 알고 있었으나
청군 백군으로 가족이 나뉘어
점수가 올라갈 때마다 환호성이 높았고
어머니의 열렬한 응원에도
6학년인 누나는 부끄러운지 치마를 거머쥐고
남들보다 훨씬 뒤처져서 달리고 있었으니
평소 수줍어하는 모습인데 너무 안쓰러웠으며
운이 없게도 뜀박질 잘하는 큰 아이들과 섞여서
순위를 다투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고 목소리가 들려와
기를 쓰고 달려서 골인하여 씩씩거리는데
삼등을 빼앗긴 아이가 하는 말이 아직도 생생하고
자기가 근소한 차이로 먼저 들어왔는데 억울하단다
실제로 막상막하였겠지만 눈 돌릴 여유가 없어
까마득하게 몰랐는데 아직도 그의 음성이 떠나질 않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억울해했을까마는
상급생들이 들어오는 대로 순위를 정했으니
난들 어찌할 성질의 것이 아닌데
그의 음성이 자꾸 들려오며 가슴이 쿵쾅거려
제비를 보면 운동회 생각이 나고
4학년 때의 운동회만 기억이 나니
이겨서 공책을 받아왔지만
못 받고 없는 집안의 그 아이는 얼마나 속상해했을까
제비는 또다시 찾아오겠지만
훨씬 규모가 작아진 학교와 학생 수로 조용하고
거대한 나무들도 운동장에서 사라졌으며
단번에 모교를 찾지도 못하고 지나쳤으니
변화는 놀랄 만큼 심각하긴 한데
그래도 남아 있는 그때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고
만나면 반가움으로 옛날처럼 재잘거림은 여전하며
서로 변한 모습에 깔깔거리니 이 아니 반가울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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