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배 중진
조상은
자손을 욕 먹이지 않으려
잡초로 비석을 가리고
풀벌레 동무 삼아
이제나저제나
오솔길을 내려다보시네
발소리만 나도
반가워하시며
마냥 손들어 흔드시지만
바쁜 손들은
차일피일 미루다가
추석이 다 되어서야 가까스로 잠깐 얼굴 내밀며
멋대로 자란 숲을
일 년에 단 한 번 깎아주는 것으로 생색을 내지만
그마저 감지덕지할 수밖에 없고
잘 내려갔다가
행복하게 살면서
내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 주길 바라는 마음이니
살아서 키워주고 지켜주고
죽어서도 걱정이니
이 무슨 기막힌 인연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