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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쾌

배중진 2018. 2. 17.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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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쾌

최근 수정 시각:

고조공신후자연표(高祖功臣侯者年表第六) 후제(侯第)

4위 강후(絳侯) 주발

5위 무양후(舞陽侯) 번쾌

6위 곡주후(曲周侯) 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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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 기원전 189년

이름

번쾌(樊噲)

작위

무양후(舞陽侯)

시호

무후(武侯)

고향

패군(沛郡)


1. 개요2. 그는 누구인가3. 그의 행적4. 그에 대한 당대의 평가5. 기타 이야깃거리

1. 개요[편집]

중국 초한쟁패기, 전한(前漢) 한고조(漢高祖) 시대의 군인. 유방(劉邦)의 최측근으로 함께 하며 천하통일에 공헌을 했다.

2. 그는 누구인가[편집]

출신은 개잡던 백정이었고 유방의 친구였다고 전해지는데, 관상을 볼 줄 아는 여문이 그의 장래를 알아보고 그의 둘째 딸인 여수를 아내로 주었기에 여문의 첫째 딸인 와 결혼한 유방과는 동서지간이 된다.

삼국지연의장비와 비슷한 포지션이지만 천한 출신과 산적 두목 같은 겉모습과는 달리, 예의가 바르고 아랫사람들을 잘 대우했다고 한다. 개백정 시절부터도 사람들을 잘 대우하여 그가 장군이 되었을 때도 옛 인연으로 따르던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 역사에서 장비가 군자에게는 잘 대했지만 범인들에겐 가혹하게 대했고, 이게 사망원인이 되었던 것하고는 정반대. 다만 이런 점 때문에 유방이 그를 견제했을 수도 있다.

성품은 과묵하면서도 타인에게 의지가 되며, 거칠어보이는 외면과는 달리 믿음직하고 예와 의리를 중시하는 협객 기질이 남달랐다고 전해진다. 또한 미천한 출신과는 다르게 언변에서도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어서 향락에 빠진 유방이나 홍문연에서의 항우가 반박하지 못했다. 더불어 가정적으로 자상한 남편이기도 하였는데, 유방의 바람기 때문에 나중에는 원수지간이었던 유방과 여후와는 달리 번쾌와 여수는 사이가 매우 좋았다. 그래서 여수는 나중에 번쾌를 압송한 진평을 증오하여 그를 죽이고자 헛소문을 퍼뜨릴 정도였다.

3. 그의 행적[편집]

그의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홍문연에서 죽음의 위기에 처했던 유방을 구해낸 것이 있다. 이 때 사내다운 녀석이라 생각한 항우가 술을 주자 사발로 마셨고 돼지고기 안주는 방패를 접시삼아 칼로 썰어먹었다고 전해진다.[1] 이를 보고 항우는 연신 "참으로 장사로다!"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남자답고 용맹한 사람을 좋아한 항우의 성품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렇듯 번쾌 역시 일반인과는 상대가 안 되는 괴력을 지녔지만, 이 시대에 항우라는 절대무적 개사기 먼치킨이 있어서 그 위력이 좀 약해보이기도 하고 묘하게 이래 저래 취급이 안 좋다. 그저 안습. 뭐 그래도 홍문연에서는 번쾌의 모습에 천하의 항우가 화들짝 놀랄 정도였으니 나름 괜찮기도?

행정적인 능력을 보여준 적은 없지만 정치적 식견은 나름대로 지녔는데 진의 수도 함양을 점령한 유방이 쾌락(?)에 빠지자 강경하게 경고해[2] 유방이 한 수 접을 정도로 막역하고 신뢰하던 사이였다. 무장으로서도 뛰어나 훗날 한이 세워지고 난 후, 왕항과 조리[3]가 흉노를 등에 업고 공격해 왔을 때 빼앗긴 땅을 회복한 것은 다름아닌 번쾌였다.

천하통일 후 유방이 즉위한 뒤 좌승상, 상국이 되었으며, 그 뒤 여러 반란을 평정하였다. 그러나 말년에 의심에 사로잡혀 신경이 예민해진 유방에 의해 숙청의 위기를 맞아 죽을 뻔하지만, 진평이 훗날을 염려해 손을 쓴 덕택에[4] 목숨을 건지고 반역혐의도 벗겨져서 천수를 누리다가 죽었다. 의심을 받은 까닭은 특이하게도 고제와 동서간이기 때문. 고제는 말년에 첩의 자식인 유여의 때문에 아내 여후와 사이가 나빠졌는데 번쾌는 아내 여수와 사이가 좋았다. 그러던 차에 누가 고제에게 번쾌가 여수의 언니인 여후 편을 들어 유여의를 죽일 거라고 모함한 것에 고제가 홀딱 넘어가버렸다. 여수는 이 일로 진평을 집요하게 괴롭혔다가 여태후가 죽은 뒤 진평과 주발이 들고일어날 당시 분노한 폭도들에 의해 맞아 죽는다.

번쾌와 여수 사이에는 번항(樊伉)이라는 자식이 있었는데, 여후 시절에 권세를 누리다가 여씨 몰살 때 죽었다. 이렇게 번쾌의 대가 끊기는가 싶었지만 번씨 가문은 번쾌의 공적으로 복권되어 서자 번불인(樊市人)이 열후로 대를 이었다. 그러나 번불인의 아들 번타광(樊他廣)이 열후가 된 후 번타광이 사실 번불인의 아들이 아니라는 게 밝혀져서[5] 당시의 황제였던 경제에 의해 번타광의 작위가 몰수, 서인이 되었다.

4. 그에 대한 당대의 평가[편집]

흉노가 여후에게 무례한 편지를 보내자[6] 자신에게 10만 군사를 주면 다 박살내고 오겠다고 얘기했지만 계포[7]가 "선제께서도 40만에 명장들을 데리고 갔다가 깨졌는데 번쾌 따위가 어떻게 이기겠습니까"라는 식으로 까였다(...)는 일화가 있다.

한신이 회음후로 강등된 후 분을 삭이며 지낼 때 한번은 번쾌의 집에 방문하였는데, 번쾌는 깍듯하게 한신을 존중하고 배려했으나 한신은 번쾌의 집을 나오면서 "내가 번쾌 따위와 동급이 되다니"라고 한탄했다. 개국공신을 무시한 한신이 괘씸하게 여겨질 법도 하지만, 사실 한신과 번쾌 사이에는 포지션의 격차가 있었다. 한신은 전군 총사령관에서 시작해 공을 세우고 왕위에 앉았고, 번쾌는 최전방 지휘관에서 시작해 제후의 자리에 앉았다. 따라서 한신의 한탄은 자신의 입지가 그만큼 낮아졌음을 분하게 여기는 것이다.[8] 한편 다른 해석도 있는데, 회음후로 강등당했을 때 신하들이 한입모아 한신을 죽이려고 했던 것 때문에 한신이 삐딱(...)해졌을 수도 있다.

계포와 한신의 일화 외엔 네임드가 번쾌를 평가한 것이 없어서 당대의 취급이 참으로 별로였다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계포의 일화는 조정 내에 모험주의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고, 한신의 일화는 왕에서 후로 격하된 한신이 자격지심으로 외친 것이니, 그것이 진정 당대에 번쾌의 평이 그닥 좋지 못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번쾌의 열전은 역상, 하후영, 관영과 함께 <번역등관열전>[9]에 실려있는데, 사마천은 번역등관열전의 말미에 "내가 풍패에 가서 이 사람들 자료수집을 해 보니까 참 재밌던 게 모두 칼부림하거나 개장수였거나 비단을 팔았던 사람들이었다. 이 양반들은 자신이 우리 고조를 만나 한 제국 조정에 이름을 날리고 자손들이 떵떵거리며 살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을까?"라는 소감을 덧붙이고 있다[10]. 또 재미있게도 사마천은 이 사론에서 번쾌나 하후영 등이 유방에게 붙은 것을 "파리떼가 준마 꼬리에 붙어 천리를 가듯이[11] 고조를 만나게 되어"라고 표현하였다. 사마천의 센스가 느껴지는 대목.

5. 기타 이야깃거리[편집]

조조는 자신의 부하인 허저를 이 사람에 비유하며 '나의 번쾌'라고 칭했다 전한다.

일본 전국시대의 오다 노부나가는 당시 동맹이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유방에, 혼다 타다카츠를 번쾌에 비유했다. 실제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하고 혼다 타다카츠도쿠가와 사천왕의 필두로 여겨지며 오늘날에도 전국시대의 여포 같은 위치로 각종 매체에서 그려지고 있다.

한나라 이야기에서는 비중이 크게 줄었다. 뭐 중요한 부분에서 나오긴 하지만...진평이 그를 압송하려고 할때 어이없어하기도 하고 이후 여후가 진평을 용서할때 번쾌는 "기분이 나쁘긴 해도 뭐....날 막 대하지 않았으니까..."이러면서도 뭔가 아리송한 반응을 보인다.

고우영의 초한지에서도 현대로 치면 사채업자 두목마냥 어린애는 얼굴만 봐도 오금을 지릴 정도의 험상궂은 거한으로 나오며, 위의 홍문연에서 난입했을 때 파티 장식용으로 탁자에 놓여있던 커다란 돼지뒷다리를 한손으로 잡고 으적으적 씹어먹는게 항우의 마음에 들어 분위기를 유하게 만들고 주군의 위기를 구해낸다. 그리고 유방을 모시고 피신하는데, 이 와중에 과음을 한 상태로 뜀박질을 하다보니 숙취로 인사불성이 되는 개그장면도 나온다. 십팔사략에서도 동일한 내용이 나오는데, 유방의 호위를 위해 잔치에 들어오자 왠 거한의 난입에 항우가 놀라며, 술을 권하자 사발로 들이키며 안주로 준 돼지고기를 방패에 얹고 장검으로 썰어먹었다고 묘사된다.

적룡왕에서의 이미지도 비슷하다. 충직하고 용맹한 유방의 심복이며 어벙해 보이는 얼굴이 포인트. 유방이 패현을 점거하기 직전 다른 도적떼와 패현 성문 앞에서 전투를 벌이는데 혼자서 적진으로 닥돌하여 적들을 무인지경으로 베어 인간흉기의 일면을 보인다. 이 때 적을 벨 때마다 카운트를 하다가 열 명째 벤 후에 "헤헤, 이 다음부터는 셀 줄 모르니까 알아서 해~"라며 계속 적을 도륙하는 장면이 백미. 홍문연에서의 난입도 그리고 있는데 여기서는 아예 유방을 베려 한 항장을 몸으로 눌러서 제압해 버린다.

일본TV 삼국지의 비디오 더빙판에서는 조운이 자신의 이름을 번쾌라고 소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물론 그 이후의 장면에서는 제대로 조자룡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2011년에 개봉한 영화인 '초한지 천하대전'에서는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젊은이로 나온다. 여기서 장량과 범증이 둘이 바둑을 두는 장면이 있는데 서로 유리한 흑돌을 가지겠다고 신경전이 오가자 번쾌가 자기 손가락이 몇개인지 맞추는 쪽이 흑을 두게하자고 한다. 항우는 당연히 10개라고 하고 번쾌는 자기 손을 보더니 다짜고짜 새끼손가락을 물어 뜯어내서 9개로 만들어(...) 장량에게 흑돌을 쥐어준다. 이렇게 충직한 번쾌도 천하통일 후 유방이 벌이는 숙청질을 보고 마음의 상처를 입어 눈물을 흘리다 자살한다.(....) 차칸남자

초한전기에서는 위의 장비와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했는지 신삼국에서 장비를 연기한 캉카이 씨가 번쾌를 연기하였다. 여문이 둘째 딸인 여수를 유방에게 여치를 시집보내 듯이 보낸 것이라니라, 원래 노관에게 시집가지로 한 여수가 번쾌랑 눈이 맞아서 번쾌가 여수를 NTR한다(...). 한신이 대장군이 되었을 때 반발이 제일 심했는데, 한신의 전략이 계속 맞아 떨어지니 한신을 많이 따르게 된다. 홍문연때는 자신은 정치는 모르나 의리는 안다며 특유의 의리론으로 항우의 마음을 돌려놓는다.

파한집에서는 주인공 백언이 자신의 호위무사 호연을 두고 '나의 번쾌'라고 부른다. 기생집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던 중 춤추던 무희가 갑자기 백언에게 칼을 들이대는데 이걸 호연이 막자 저렇게 말한 것.[12] 작가가 삼덕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조조와 허저의 일화에서 따왔을 가능성도 높다.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항우와 유방(초한지)에서는 항우도 능가하는 떡대로 등장.

이런 인물이 일개 개백정으로 살던 패현이라는 동네는 도대체 무엇인가 싶다. 소하가 동사무소 보고 유방이 동네백수하던 동네

[1] <사기> 원문에는 돼지 생고기로 나와있지만. <사기색은>에 따르면 오자(誤字)라고 한다. 애초에 잔치하면서 다같이 먹을 음식에 못 먹을 것을 올려두겠는가.[2] 일설에 따르면 유방이 미녀와 보물에 완전히 맛탱이가 가자 번쾌가 쳐들어가서 바짓가랑이 잡고 끌어내다시피 하면서 데리고 나왔다고도 한다. 옆에서 장량도 한마디 했다.[3] 흉노에 항복한 장수들.[4] 진평 항목 참조.[5] 번불인이 병약한 탓에 아이를 만들지 못하자 자기 부인과 동생을 간통하게 하여 나온 자식을 자기 자식이라고 속이고 대를 이었다. 번불인이 정말 병약했거나 고자였을 가능성이 높다.[6] 이때 보낸 편지 의 내용은 대략 '난 내 아내를 잃었고 너도 남편이 없으니 서로 부족한 것을 채우자' 였다.[7] 그는 항우의 부하였으나 항우 패망 후 유방에게 사면받고 한조정에서 일했다.[8] 초한전기에서는 북벌 작전에서 번쾌가 한신 밑에 소속된 장수였다. 이에 따르면 한신은 자기가 명령하던 부하와 같은 급이 된 것이다.[9] 쾌, 상(역이기의 동생), 공(하후영의 작위), 영의 머릿자를 딴 제목.[10] 그런데 사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떵떵거리면서 2대 이상을 버틴 양반들이 거의 없다. 사실 자식의 능력과 처신은 부모와는 별개인 것이라. 자손들이 떵떵거리고 살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는 정도의 뜻.[11] 당연히 '파리떼'는 번쾌 등을, '준마'는 유방을 의미한다. 이 표현은 사마천이 중니제자열전에서 안회를 평가하며 이미 한 번 써먹은 바 있다. 어째 실상은 그 반대 같은... 착각? 착각 맞다. 유방은 그 항우와 직접 맞닥뜨려 싸운 사람이다.[12] 사실 이건 당시 장안 기생집에서 유행하는 놀이였다고 한다. 춤추다가 갑자기 칼을 들이대 태연하게 있으면 의기가 있다고 띄워주고 칼을 막아내면 무예를 칭찬받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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