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李奎甲
1887년 11월 5일 ~ 1970년 3월 20일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 종교인이다. 자는 원서(元瑞), 호는 운호(雲湖)이다. 본관은 덕수이다. 종교는 개신교이다.
1887년 충청도 아산군(현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태어났다. 한성사범학교, 신학교를 졸업하고 개신교 목사를 지냈다.
1911년에는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지하단체인 신조선당을 조직했다. 1919년 한성임시정부를 조직하고 평정관에 선출되었다. 같은 해 4월 10일 상하이에 도착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해 임시의정원 충청도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27년에는 국내에서 안재홍, 조병옥, 홍명희 등이 조직한 신간회 경동지회위원장으로 취임해 활동했다.
8.15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재무부장을 지냈으며, 또한 조선공산당의 조선청년전위대 대장으로 있던 김두한을 설득하기도 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국민당 후보로 충청남도 아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홍순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이영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5.16 군사정변 이후에는 민주공화당에 몸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