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배 중진
1845년부터 8월에 열리는
농축산물 품평회라고 하는데
규모가 대단했고 인원도 많았으며
덩달아 가축들도 사람을 구경하고
애써 지어온 자기의 모든 것과
남의 것을 비교하여 분석하고
더 좋은 기술을 배워서
오늘날의 미국을 이루지 않았을까
먹고 사는 것에 급급해하다가
남은 것을 이웃에 나눠주고
또 팔기도 하여 생활비로 쓰고
필요한 것은 사기도 했으리라
한낮의 열기는 그들을 힘들게도 했지만
나무그늘 아래는 시원하기도 하여
동물들이 위험하다 부르짖는 소리
인간과 곤충들의 잡다한 소리가 어울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Dutchess County Fair는
옛것과 현재의 것이 어울려
성황리에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사람사는것같읍니다
활발해보이고
힘이 넘쳐보이고....
아름답습니다
행복한밤 되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늦은 저녁에 안부인사 드리옵고
전통문화의 축제
아름다운 삶의 모습에 쉬어감에
감사드립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Dutchess County Fair
라는 행사..
한국에서는 농산물따로 벼룩시장을 따로 작은 규모로하는데
이곳 행사는 즐거운 분위기도 있습니다.
와아!
볼거리 많은 시장이네요.
재미있으셨겠습니다.
전 하루종일 시장구경하라면 좋은데요.ㅋㅋ
사랑하는 사람은..
생각하고 있어도 그립고(愛)
사랑하는 사람은
앞에 있어도 보고 싶다(愛)
사랑하는 사람은..
꿈속에서도 그립고(愛)
사랑하는 사람은..
함께 걸어도 보고싶다(愛)
담고 살아도 그립고
담겨 살아도 보고싶은 그대(愛)
그대는 내 사랑...(愛)
아주 멋진 영상과 좋은글에 (흠)뻑 취했습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 가득한 (즐)거운 날 되시길 바랍니다(~)(♡)
추억이란 글을 잘 감상했습니다.
추억 속의 음악이 하나씩 흐르는 동안
그때 있었던 일을 생각하기도 했지요.
일도 많고 잊기도 자주 하지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것도 많이 있지요. 멋진 일만 있으시기 바랍니다.
좋은 수필집을 소개하셨군요. 기회가 있으면 사서 진면목을 보고
싶기도 합니다. 풍부한 인생경험담을 멋지게 표현하셨지 싶습니다.
요사이는 제법 선선한 느낌을 주는 날씨였지요. 풀벌레들의 노랫소리가
방안까지도 들려와 심심치는 않았답니다. 시원하고 즐거움이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이재부 수필집 강으로 지는 노을
남산에 한옥마을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매우 아름답고 볼 것이 많이 있네요.
도회지의 새들은 인간과 같이 지내는 방법을 알고 있듯이 경계를 그렇게 하지는
않는데 멋진 사진 잘 감상했습니다. 찾아온 외국인들이 즐거운 추억을 많이 담아
갔으면 하는 희망 사항이지요. 당국에서는 잘 보존하여 세계에 널리 알렸으면 합니다.
즐거움이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백인 남자만 출입하다가 타이거 우즈 때문에 유색인종도 허용했지 싶답니다.
타이거가 챔피언이 된 것이 4~5차례 되지요, 제가 알기에는. 입장하는 것도
쉽지 않고 돈이 많이 든다고 들었습니다.
여성에 문 연 오거스타 골프장
타이거 우즈가 1997년 도에 우승했답니다.
저도 몇 번 져봤는데 작대기로 바치고 앞뒤로 흔들어서 움직이면
지고 그렇지 않으면 지지 않았지요. 무거워 가슴이 답답한 것을
참고 오래 가야 한다는 것은 고역 중에 고역이었지요.ㅎㅎ. 그나마
고등학교 때는 리어카가 있었고 그 후론 객지로 떠돌아 농사일을
모릅니다. 좋은 추억의 말씀 잘 이해를 했답니다. 가끔 일기장을
들추면 제가 생각나는 일들이 아마도 몇만 분의 일일 겁니다. 작년에
고등학교, 중학교 때의 일기장을 읽어 보면서 깜짝 놀랐지요. 기억엔
한계가 있음을 다시 느꼈답니다. 좋은 글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처음 사진은 목화를 연상하게 하는군요.
멋지고 시원한 모습이네요. 작년 한국에
갔을 때 눈이 많이 내렸으면 했는데 아쉽기만
했지요. 눈을 치우는 것은 어려웠지만 보는
재미가 있었으면 했는데 불발로 끝났지요.
가끔은 폭설도 괜찮았답니다. 멋진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 소쿠리도 만들었지 싶습니다. 싸리나무로 빗자루도 만들고
또 재료가 있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멋진 사진 잘 감상했습니다.
즐거움이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최근 한국을 방문했을 때 청주를 많이 다녔답니다. 동생들의 차편이
없었다면 언감생심이었지요. 대전은 잘 알고 있지만 가까운 청주는
마음속으론 더 멀고 아는 곳도 없었지요. 충북대학교 병원에 이모가
입원하셔 방문했고 홀로 계신 가친을 모시고 매제와 점심을 먹기 위해
다녀오곤 했었으며 누나가 인천에서 버스를 이용하여 내려올 때
마중을 나갔던 장소에 그런 유산이 있음을 몰랐답니다. 이를 계기로
더욱 찬란한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셔야 하는 소설가님의 책무가
무거우시리라 믿으며 좋은 일만 있으시기 바랍니다.
직지
신생 미국이 남북전쟁을 마치고 세계로 진출하던 시기였지 싶습니다.
최강국 영국도 물리치고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거대한 땅을
확보하기도 하였으니 거칠 것이 없었지요. 그때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면
일본에게 쉽게 먹히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좋은 작품 감사하게 잘 보았답니다. 역사를 알아야 미래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과 같이
왜곡해서는 안 될 역사이지요.
광성보 전투 1871년
어재연 장군이 지키는 350명 수비대는 로저스 사령관이 이끄는 미해병 1230여 명과
수륙양용 전을 펼쳤고 24시간 만에 전원 장렬하게 전사했던 신미양요.
미해병은 2명의 전사자와 9명의 부상자가 전부였다니 이것은 전쟁이 아니고
살육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신미양요(辛未洋擾)는 1871년 6월 10일(고종 8년 음력 4월 23일)에 발생한 조선과 미국 간 전쟁으로, 전술적으로는 미국이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전략적으로 결국 목적한 통상조약 체결은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고, 조선은 이를 계기로 쇄국정책을 더욱 고수하게 되었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 발생 뒤 미국은 두 차례 탐문항행(探問航行)을 실시하면서 셔먼호 사건을 응징하고 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동시에 조선과 통상관계를 수립하기 위하여 두 차례나 조선 원정계획을 수립하였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하였다.
결국 1871년 미국은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 전통적인 포함외교에 따라 조선을 개항하기 위하여 마침내 조선원정을 결행하기로 결정하고 주청 미국 공사 로 (Low)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동시에 아시아함대 사령관 로저스(John Rodgers)에게 해군 함대를 동원, 조선 원정을 명했다. 미국은 지금의 인천국제공항 근처까지 온 다음, 강화도로 진격하였다.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은 1866년(고종 3년) 음력 7월 12일(양력 8월 21일)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 평양에서 통상을 요구하며 행패를 부리던 미국 상선(商船) 제너럴셔먼호(General Sherman號)를 평양 군민(軍民)들이 응징하여 불에 태워버린 사건이다. 이 사건은 신미양요의 원인이 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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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2014-8/24/2014
169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