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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소니(야인시대)

배중진 2017. 1. 2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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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소니(야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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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캐릭터3. 작중 행보

1. 개요[편집]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는 번역가로 유명한 조상구씨가 명연기를 펼쳤다. 김두한 장년기 파트에서 아주 비중있게 등장한다. 50화 마지막에서 2부가 시작되며 청년 연기자에서 중년 연기자로 바뀌는 씬에서 아무것도 없는 검은 배경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하며 가히 진 주인공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물론 실제 비중도 주연을 압도할 조연 정도였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상당한 메리트다. 고집이 세고 독고다이, 독불장군이라 상대방이 아무리 설득해도 듣질 않고 항상 찰진 이북 사투리로 '아 거 시끄럽다우!' 라며 상대방 말을 끊는다.

2. 캐릭터[편집]

싸움 실력은 김두한과 함께 작중 최강급. 린치 사건과 금강과의 싸움을 제외하면 작중에서 유효타를 허용한 횟수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그나마도 금강과의 싸움은 정전 때문에 흐지부지됐다.[1][2][3]

졸개급은 물론이고 행동대장급들이 다구리를 놓을 때 정도는 애초에 막지도 않고 다 피해간다(...). 이정재가 부산에서 깡패들에게 습격당했을때 처음엔 잘나가다 결국 막 얻어맞고 고전한 반면 시라소니는 아주 가볍게 다 털어버렸다. 심지어 이정재는 깡패 두목의 쇠사슬 공격에 꽤 고전한 반면 시라소니는 쇠사슬을 순식간에 잡아내고 부산 깡패 도끼 패거리들을 개박살 내버렸으니 확실히 이정재 보다 실력이 우위인걸로 표현된다.

하지만 그런 실력도 실력이지만 김두한과 이정재, 심지어 자신이 일단은 몸을 담고 있는 명동파 등의 대립에서조차 한 발짝 떨어진 제3세력의 자유로운 풍모가 부각된다. 명동파나 김두한, 켈로부대원 등 친분이라고 할 만한 관계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독고다이를 즐기며 정치나 이념 어느 쪽에 속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다만 공산주의자들은 거부한다. 그들 때문에 고향에서 쫓겨났으니 당연한 것. 일단 김두한이 본격적으로 국회에 간 후부터는 주먹계에서는 시라소니를 일단은 이화룡과 한 패로, 명동파 소속 비슷하게 보고 있다. 시라소니가 린치를 당했을 때도 명동파 정팔이 패거리를 이끌고 복수를 시도했다.

3. 작중 행보[편집]

청년기엔 그냥 북쪽에 시라소니란 강자가 있다라고 언급만 되고 8.15 광복 후 김두한의 장년기가 시작되면서 등장한다. 이화룡정팔 등과 함께 남쪽으로 왔다고 하며, 김두한에 대한 소문을 듣고 김두한을 깨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 후로 우미관 주변을 들락거리며 김두한을 찾다가, 개코, 신영균, 홍만길을 가볍게 제압하는 위엄을 보여준다. 당시 김두한은 백의사에게 가 있던 상태라 부재중이어서 나중에서야 만나게 된다.

김두한과 처음 만날 때 다들 대결을 예상하고 기대했지만 김두한이 먼저 나서 형님으로 모시게 된다. 사실 이때 김두한은 막 전향하여 좌익패와 싸우는 중이었다. 이와중에 시시콜콜한 문제로 명동파와 전쟁이 벌어지면 좋아하는건 좌익 뿐이었다. 이후 일단은 명동패 소속으로 있었으나 조직의 사안에 관여하지는 않고[4]평소에는 소주병이 하나씩은 자기 품에 껴 있는 등 술꾼으로도 묘사된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실력은 최강이다. 조선청년전위대 정예대원 20명을 박살 낸 것도 술 마시고 뻗은 다음날 오전에 일어난 일.잠자는 호랑이 아니 시라소니의 콧털을 건드린 댓가 물론 본인은 아무런 피해가 없는 반면 전위대 20명은 아주 처참하게 박살이 났다. 이 때문에 중앙극장의 보안이 허술해지면서 벌어진 일이 다름아닌 내가 고자라니 였다. 이때 보여주는 포스가 장난 아닌데 피곤에 쩔은 얼굴과 걸쭉한 이북 사투리로 "나 잠 좀 자자 왜 이리 시끄럽냐"며 투덜대다가 정예대원들이 덤비자 순식간에 눈빛이 살면서 다 때려눕히고는 다시 피곤에 쩔은 얼굴로 돌아와 잠 타령을 하고는 노래를 흥얼대면서 사라진다. 과연 강자다운 모습.

이후 용산 철도파업때 모습을 드러내는 등 은연중에 우익 활동을 하기도 한다.[5] 이후 한국 전쟁 중 부산으로 피난을 온 이정재가 다시 장사를 시작할 때, 부산깡패들에게 다굴당하던 이정재를 구해주어 의형제가 되었다.[6]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시라소니에게 켈로 부대[7]라는 특수부대의 중요직을 맡아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켈로 부대는 훈련을 하던 도중에 휴전선언으로 전쟁이 끝나게 되어 쓸모가 없어져버리고 그 탓에 켈로부대원들은 먹고살길이 막막해져 버린다. 이 때문에 대장으로써 책임감을 느낀 시라소니가 이후 이정재에게 계속 돈을 빌리는 계기가 되고, 나중에는 동대문의 가게 자리까지 알아봐달라고 할 정도였다. 켈로부대원들은 시라소니에게 계속 감사하며, 나중에는 자신들을 도우려 동대문파에 갔다가 이석재 패거리에게 린치를 당하고 병실에서 다리마저 박살나자, 이 켈로부대원들은 그 이정재를 납치하여 끌고오기까지 한다! 다만 시라소니는 비겁하게 싸우기 싫다며 돌려보내고, 자신이 직접 찾아가 작살을 내겠다고 당부한다.

처음에는 이정재가 순순히 돈을 건네주어 딱히 갈등이 없었다. 하지만 이정재에게 몇 번이고 찾아와 돈을 요구하고 나중에는 아예 점포 양도까지 해달라며 막대하는 시라소니에게 이정재의 부하들이 반감을 품게 되고, 시라소니를 깨버리자는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이정재는 반대했지만 결국 김기홍을 비롯한 동대문파 간부들이 이정재 몰래 시라소니를 꾀어낸 뒤 무기로 무장한 부하들로 떼로 몰려가 시라소니를 습격한다. 그럼에도 시라소니를 당해내지 못하고 밀려버리니 비겁하게 눈에 석회가루[8]를 뿌린후에 반쯤 죽여서 백병원에 보내버린다. 거기다 여기서 끝난게 아니라 이석재가 독단으로 병원에 찾아가 쇠절구공이로 시라소니의 다리를 으깨버려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이를 들은 신사 파이터 기믹의 이화룡이 동대문 일대를 두들기라고 지시할 정도로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동대문 측도 두들기게 내버려두고 사전 지시를 받은 경찰도 체포가 아닌 해산 명령을 하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헌데 극중 이정재 입장에서는 전혀 지시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부하들이 멋대로 벌인 일이었으니 억울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나 시라소니의 하나 남은 다리까지 으깨버린 이석재를 향해서는 분노의 뺨싸다귀를 갈기며 대노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일로 이정재에 대한 원한과 분노로 이를 갈게된 시라소니는 미처 상처가 다 낫기도 전에 병원을 나와 켈로부대원들의 아지트에서 잠시 지내다가 이정재를 직접 박살내버리기 위해 산으로 올라가 수련과 함께 재활 훈련에 들어가게 된다.[9] 이때 시라소니의 복수를 위해 김동진의 사주를 받은(김동진은 오래전부터 이정재에 대한 반란을 계획하고 있었다) 켈로부대원들과 정양원 사람들이 이정재를 습격해 세트로 떡을 만들어 놓은 뒤 이억일은 버리고 이정재를 시라소니 앞으로 데려갔지만 시라소니는 복수는 자기가 직접하겠다며 놓아주기도 한다. 작중에서는 켈로부대원 수십명이 이정재와 이억일을 다구리하여 쓰러뜨린 후 이정재를 납치하지만 실제 이정재를 납치하였던 켈로부대원은 4명이라고 한다.

재활을 완벽하게 마친 뒤 산속에서 내려와 복수를 위해 혈혈단신[10]으로 이정재와 동대문파를 찾아간다. 때마침 동대문파는 김동진 저격사건으로 감옥에 있다가 출소한 후 파티를 열었으나 정작 이정재는 이미 귀가한 뒤였고, 이석재와 임화수를 비롯한 동대문 일당 거의 전원을 상대하여 유지광의 넘버1,2 부하라고 할 수 있는 도꾸야마와 독사를 2:1로 발라버리고, 이후 덤벼든 권상사, 망치를 비롯한 동대문파 조직원들과 이석재를 박살내버린다. 특히 이석재와의 일대일 대결 후 "자네 주머니에 총이 있다는 걸 다 알고 있었는데, 왜 쏘지 않았나" 라는 시라소니의 물음에, "그런 생각을 안한건 아닌데, 내가 총을 빼는 시간보다 형님 주먹이 더 빠르다는 걸 깨달았다" 라고 대답했다.[11] 어쨌든 시라소니는 자신의 목적은 너희들이 아니라 이정재라고 하며 일단 물러난다. 그리고 다음날 밤 이정재의 집으로 직접 찾아간다.

막상막하의 접전을 벌이던 중 몇번의 공격이 이정재에게 들어가자, 이정재는 자신이 졌으니 마음대로 하라며 G.G선언을 한다. 이에 시라소니는 수작부리지 말라며 공중 발차기를 날리지만 이정재는 눈을 감으며 공격을 그대로 받으려했다. 제대로 맞았으면 끝장났을수도 있는 발차기를 피하지도 않은 채 사죄하는 이정재를 보자 시라소니는 씁쓸한 듯 웃으며 이정재를 용서하고 돌아간다.

'그 힘을 나라를 위해 쓰자'는 김두한의 제의로 잠시 야당 대표 신익희, 장면의 경호를 서기도 했으나 일이 끝나자마자 아무 보수도 받지 않고 소리없이 사라졌으며, 그 길로 산중에 들어가 또다시 혼자가 된다. 여담으로 이 기간에 개그씬이 하나 있는데, 경호를 설 무렵 잘 안하다가 하게 된 넥타이가 갑갑해 풀어 주머니에 넣어놨는데, 정대발이 그와 대화를 하다가 주머니에 짱박은 넥타이를 보고선 능청스럽게 다시 메어주고 성님 타이가 삐뚤어졌어라 좀 꽉 조이자 켁켁 하며 갑갑해 한다. 선거가 끝난 이후에 다시 야인으로 돌아갈땐 이 넥타이를 다시 푼다.

한동안 등장이 없다가[12] 이정재의 몰락 시점에서는 개신교에 귀의하여 교인이 된 상태였으며 극중 언급을 보면 깡패 소탕 당시 잡혀가지 않기 위해 예수쟁이 행세를 했다는 식의 말을 하지만 후에 진심으로 귀의한 듯 하다. 취조실 장면에서 한 손에 성경책을 들고 오랜만에 재등장. 조사관이 시라소니 린치 사건의 진상을 묻자 "그런 일 없습네다."라고 말하며 일부러 이정재를 감싼다. 거짓말 하는 거 아니냐는 조사관의 말에 성경책을 내보이며 "내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요. 예수 그리스도 말이요. 이 친구는 죄가 없소."라고 말하며 자신의 증언을 믿어줄 것을 호소하는 것은 덤. 이 때는 특유의 억센 이북 억양까지 순화된 부드러운 말씨로 이정재의 린치 사실을 부인한다. 취조실을 나가는 길에 이정재를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덩대...힘내라. 잘 될기야... 바깥 세상에 나오면 예수 믿으라... 인간사가 허망하드라..."하는 대사가 또한 백미.

그러나 결국 이정재가 사형당하자 김두한, 이화룡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슬퍼했다. 이정재를 한 번 살려보려고 '예수쟁이가 거짓말까지 해봤다'면서 노력했는데, 그게 수포로 돌아갔다며 매우 침통해 했다. 얼마 후 김두한의 비서 정대발이 다시 정치에 뛰어들려는 김두한의 지시로 그를 청년단체에 스카웃하려하자 지금은 신을 믿고 있다면서 정중하게 거절하고, 김두한에게예수를 믿으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한다. 이때 영락교회 장면은 실제 영락교회 교인들을 섭외하여 촬영되었다. 근데 김두한은 불교 마지막에는 김두한의 장례식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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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정전 전, 그러니까 싸움이 멈추기 전 까지는 시라소니가 유리했다. 왜냐하면 시라소니는 그냥 엉덩방아만 찍고 별 피해 없이 계속 싸웠던 데 반해 금강은 이미 입술이 터지는 피해를 입었고 싸움이 흐지부지 된 이후 금강이 시라소니보고 조금만 더 싸웠다간 내가 패배했을거라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번 대결로 사실 상 남한 주먹계에서는 실력 1위라는 점이 다시 한번 입증되었다.[2] 이 금강이란 캐릭터가 김두한과 시라소니를 비교하는 제일 큰 캐릭터이다. 금강은 실제로 가상의 인물이며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붙으면 어떻게 될까? 라는 것에서 만들어진 캐릭어이다. 시라소니와 무승부를 겨룬 금강이 김두한한테 짐으로써 김두한이 근소우위임을 부각한다.[3] 하지만 꼭 그렇다고 할순 없는게 시라소니vs금강 당시 시라소니가 유리했으며 싸움이 계속 진행되었다면 금강이 졌을것이다. 김두한vs금강 당시는 그 당시 금강은 시라소니와의 1시간 싸움으로 체력이 꽤 빠진 상태에서 파업 현장으로 곳 바로 출발후 김두한과 붙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반에 김두한은 얻어맞기만 하다가 아버지 버프로 겨우 이긴다. 작중 임화수가 '동양 제1의 주먹' 이라고 하고 그 외 여러가지 작중 묘사나 언급으로 볼때 최강자는 시라소니라고 보는것이 맞는듯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김두한도 그에 밀릴 실력자는 아니란것[4] 그 예로 이화룡, 정팔, 맨발의 대장, 달마, 황병관(한국전쟁 초에 사망), 오상사(한국전쟁 이후) 등이 테이블에서 이런저런 사안에 대해 얘기 할 때 시라소니는 옆 벤치에 누워 자거나 술을 먹으며 이화룡에게 자기 얘기만 한다(...)[5] 물론 자발적 참여가 아닌 강제였다.[6] 드라마 상에서는 1950년 9월, 영천 전투가 한창인 때에 이 사건이 일어나나 실제로는 1951년 1.4 후퇴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7] 미군이 한국에 창설한 부대이며 지금의 서해5도를 지킬 수 있었던 장본인들. 후방에서 여러 작전을 수행하는 부대라고 한다. 다만 비공식이라 자료는 많지 않으며 켈로라는 이름은 KLO(Korea Liaison Office: 주한 첩보연락처)를 한국식으로 읽은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8] 밀가루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은데, 오래전부터 조폭들이 이용해온 암기이다. 물과 닿으면 굳어지는 성질이 있어 눈에 들어가면 실명할 수도 있다. 다만 실제 시라소니 린치사건에서는 고춧가루(…)를 사용했다고 한다. 다만 드라마 상에서는 여러 배우들의 안전을 위해(바람이라도 불면 석회가루가 자기 쪽으로 가니 안전이 위험해진다.)밀가루를 쓸 가능성이 높다.[9] 이 때 대부분의 대사는 "덩대, 기다리라! 이 시라소니가 간다!"였다.[10] 중간에 오상사를 비롯한 명동파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지원을 오긴 하지만 나서지 말라는 시라소니의 말에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다.[11] 이 부분은 복선 비슷하게 암시가 되어 있는 부분인데, 96화 첫 부분에서 시라소니는 자신을 진짜로 쏘려는 이영숙의 시도를 두 번이나 발차기로 저지한 적이 있다.[12] 이게 오히려 다행이었는데 그의 자리가 빈 동안 명동파는 동대문파와의 최후의 결전에서 속임수에 걸려 패배하여(유지광과 이정재가 곽영주에게 손을 써 경찰을 부른 다음 당일 날 경찰이 오기 전 자기 부하들을 이끌고 보스 이화룡까지 자기 구역에 넘어 온 명동파 전원과 적당히 싸우다 곽영주가 지시한 대로 경찰이 와 명동파만 전원 싹 잡아갔다. 동대문파는 당시 장충단집회 방해 사건으로 수배 중인 유지광 이외에는 아무도 이 사태로 잡혀가지 않았다. 그나마도 유지광은 형량이 징역 8개월이지만 명동파는 중형을 선고받아 최소 수년을 선고받았다. 덕분에 군사정권 이전까지는 감옥에서 푹 썩어야 했다.) 전원이 감옥에 잡혀갔다. 만일 시라소니도 거기에 참가하였으면 다른 명동파 조직원들처럼 1961년 군사정권 이전까지 감옥에서 썩었어야 할 게 뻔했다. 그 이후 군사정권 시대때 어지간한 깡패들이 붙들려갔을때 자기는 일찍 깡패짓에서 발 빼서 감옥을 안 갔으니 행운이 중첩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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