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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

배중진 2014. 3. 2. 22:42

어니스트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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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Miller Hemingway
ErnestHemingway.jpg
어니스트 헤밍웨이(1939년)
출생 1899년 7월 21일(1899-07-21)
미국 미국 일리노이주 오크 파크
사망 1961년 7월 2일 (61세)
미국 미국 아이다호 주 케첨
국적 미국 미국
주요 작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 있거라
노인과 바다
주요 수상 퓰리처상, 노벨문학상
배우자 엘리자베스 해이들리 리처드슨
폴린 피에프
마사 젤호른
매리 웰쉬 헤밍웨이
자녀 잭 헤밍웨이, 패트릭 헤밍웨이, 그레고리 헤밍웨이
서명
Ernest Hemingway Signature.svg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제복을 입은 헤밍웨이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 (Ernest Miller Hemingway, 1899년 7월 21일 - 1961년 7월 2일)는 미국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이다. 그의 모험의 삶, 그리고 대중적인 이미지가 후대에 영향을 미치는 동안 그의 실속 있고 절제된 방식은 20세기 소설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헤밍웨이는 그의 대다수의 작품을 192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 사이에 발표하였고, 1954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7개의 소설, 6개의 단편소설 모음집, 그리고 2개의 비소설 작품들을 출판하였다. 3개의 소설, 4개의 단편소설 모음집, 그리고 3개의 비소설 작품들은 죽은 뒤에 출판되었다. 그의 대다수의 작품들은 미국 문학의 고전으로 여겨지고 있다.

헤밍웨이는 일리노이 주에 있는 오크 파크에서 태어났다. 고등 학교를 마친 이후, 그는 이탈리아의 전방 군대에 입대하여 제1차 세계 대전 구급차 운전사가 되기 전에 캔자스 시티 스타지에서 몇 달 동안 기사를 썼다. 1918년에, 그는 심하게 부상을 입고 집으로 되돌아왔다. 그의 전쟁 경험들은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의 기초를 형성하였다. 1921년에, 그는 그의 4명의 아내 중 첫 번째 아내인 해들리 리처드슨과 결혼하였다. 부부는 그가 해외 특파원으로 근무했고 1920년대의 근대주의적 작가와 미술가들의 "잃어버린 세대" 외국인 커뮤니티의 영향을 받았었던 파리로 이사를 갔다. 헤밍웨이의 첫 소설인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가 1926년에 출판되었다.

1927년, 그가 해들리 리처드슨과 이혼한 후에 헤밍웨이는 폴린 파이퍼와 재혼했다. 그와 폴린 파이퍼는 스페인 내전에서 해외 특파원 생활을 마친 후에 이혼했고, 그는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다. 1940년, 마서 겔혼이 그의 세 번째 아내가 되었다. 그들은 제2차 세계 대전 도중에 그가 런던에서 메리 웰시를 만난 후에 이혼했다. 그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파리 해방 전투에 참여했다.

1952년에 노인과 바다를 출판하고 난 이후에, 헤밍웨이는 아프리카의 사파리로 갔다. 그리고, 그는 그의 남은 생애 대부분을 통증과 나쁜 건강에 시달리게 했고, 그를 거의 죽은 상태로 내몰은 비행기의 충돌 사고를 두 번 당했다. 헤밍웨이는 1930년도에 플로리다 주에 있는 키웨스트에 거주했고, 194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쿠바에서, 1959년에는 아이다호 주에 있는 케첨 위에 지어진 집을 구입했다. 그리고 1961년 여름, 그는 그 곳에서 자살을 하게 된다.

생애[편집]

1899년 7월 21일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현재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의사, 어머니는 원래 성악가로 여섯 형제 중 장남이었다. 아버지는 활동적인 인물로 낚시사냥, 권투 등을 즐겼다. 고등학교 졸업 후 1917년 지방 신문에 "캔자스 시티 스타"지의 인턴 기자가 되었다가 그만두었고, 1918년 적십자의 일원으로 이탈리아 북부의 호사루타 전선에 엠뷸란스 기사로 자원하여 중상을 입게 된다. 전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토론토 스타"지의 프리랜스 기자를 지냈고, 특파원으로 파리로 건너가 거트루드 스타인 등과 사귀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행동파 작가로 스페인 내전파시스트이자 후에 군사 독재자가 된 프랑코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참여하였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행동적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을 썼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 있거라》 등은 그러한 경험이 잘 녹아 있는 작품이다. 당시 그의 소설은 헐리우드 영화의 소재를 제공하여 영화화되기 하였다.

단편은 짧은 문체의 작품이 많으며, 이들은 대실 해미트, 레이먼드 챈들러와 이후 계속되는 하드보일드 문학의 원조가 되었다.

1954년 《노인과 바다》가 크게 평가되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노벨 문학상은 별도의 작품이 아닌 작가의 업적과 작품 전체에 주어진다.). 그러나 이 해에 두번 항공기 사고를 당한다. 두 번의 항공기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생환했지만, 중상을 입고 시상식에는 나가지 못했다. 이후 그의 특징이었던 강인한 신체와 활동적인 생활을 돌려받을 수 없었다.

만년에 사고의 후유증에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집필 활동도 점차 막히기 시작한다. 결국 1961년 아이다호 주에서 엽총으로 자살했다.

남동생인 레스터 헤밍웨이는 작가로, 손녀 마고 헤밍웨이마리엘 헤밍웨이는 여배우가 되었다.

《해류 속의 섬들》(Islands in the Stream)의 무대가 된 바하마의 비미니 섬에는 그가 머물렀던 호텔의 방을 개조하여 개장한 〈어니스트 헤밍웨이 박물관〉이 있어서, 유품 등이 전시되었었지만, 2006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생애 동안, 그는 다음과 같은 상을 받았다.

작품목록[편집]

  • 이 목록은 헤밍웨이 생전의 작품들을 나열한 것이다.

소설[편집]

비소설[편집]

단편소설 모음집[편집]

영화[편집]

  • (1937) The Spanish Earth
  • (1962) Adventures Of A Young Man은 헤밍웨이의 Nick Adams 이야기를 근간으로 만들어졌다.

사후[편집]

헤밍웨이 박물관(Museo Momerial 'Ernest Hemingway')은 쿠바 아바나에서 멀지 않은 곳에 헤밍웨이가 살았던 집에 있다. 1928년 헤밍웨이가 쿠바를 방문한 후 줄곧 머물며 '노인과 바다' 등의 작품을 쓴 곳으로 내부는 당시의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며 '노인과 바다'책이 있는 방, 타이프라이터, 동물박제, 9,000권의 장서가 보관되어 있다.[1]

주석[편집]

  1. 이동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쿠바

바깥 고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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