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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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문(金仁問, 629년~694년)은 신라의 왕족이자 문무왕 때의 장군으로, 태종무열왕의 둘째 아들이며 문무왕의 친동생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에 참여하여 활동하였으며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본관은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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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기]생애[편집]
어려서부터 글을 좋아하였고, 사어(射御 : 활쏘기와 말 타기)·음률(音律)·예서(隸書)에 능하였으며, 식견이 넓어서 남의 존경을 받았다.
진덕여왕 5년(651년), 당나라에 가 숙위(宿衛)하고, 태종무열왕이 즉위하자 압독주 총관(押督州摠官)이 되어 장산성(獐山城)을 쌓고 공신이 되었다. 백제가 자주 침공해 오자 당나라에 파견되어 원군을 청하니 당 고종은 소정방을 신구도 대총관(神丘道大摠官)으로, 김인문을 부총관으로 임명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그 후 당나라에서 전과 같이 숙위하며 당나라의 고구려 정복에 양곡을 보급했고, 문무왕 8년(668년) 당과 합세, 평양성을 함락하고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신라가 당나라 세력을 축출하려 하자 당 고종은 김인문을 신라 왕으로 대치하려 하기도 했다. 그 후 인문은 당나라로부터 보국 대장군 상주국(輔國大將軍上柱國)에 임명된 후 694년 당나라에서 죽었다.
사후[편집]
사후 시신은 신라로 이송되어 금성 남부에 장사되었다. 그 뒤 효소왕은 그를 태대각간에 추증하였다. 1990년대 이후 그의 묘비명과 문무왕 묘비명에서 태조 성한왕이라 하여 김알지가 아닌 김성한을 태조로 기록한 구절이 발견되어 논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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