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th Dakota

타탕카 이오타케

배중진 2019. 3. 10. 22:32

타탕카 이오타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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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tting Bull

타탕카 이오타케(수어: (Tatanka Iyotake/Tatanka Iyotanka/Ta-Tanka I-Yotank), 나중 이름; 훙케스니(Hunkesni), 별명: Slow(느린 사람), 훙케스니 출생, 1831년 - 1890년 12월 15일) 또는 시팅 불(영어: Sitting Bull '그가 소를 주저앉혔다'[*])는 훙크파파(헌크파파, 훙파파) 수족(Hunkpapa Sioux)의 추장이다. 이름을 번역하여 앉은 소라고도 불린다.

그는 다른 어떠한 대평원 인디언보다도 앉은소는 관대함, 용기, 인내, 백인 침입에 대한 저항 등 인디언의 미덕을 고루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성장[편집]

성격이 워낙 신중하고 차분하여 한번도 혈기를 부린 적이 없고 지나칠 정도로 침착하여 Slow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앉은 소(Sitting Bull)는 1831년경 라코타의 한 부족인 훙크파파족으로 태어났다. 그는 10세의 나이에, 들소의 새끼를 잡아 그 고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관대함을 보였으며, 14세 때에 처음으로 적을 공격해 제압함으로써 용감함을 증명했다고 한다.

백인과의 전투에 관한 한 그를 따라올 자가 없었고, 그는 그런 전투 능력을 인정받아 제일 강한 전사 집단인 그는 '강심장 결사(Strong Heart Warrior Society)'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져서 규율을 집행하는 위차사 와칸(wichasa wakan,성자)으로 인정받았다.

부족의 핵심 멤버가 된 앉은 소는 훙크파파 수족(hungpapa sioux)의 수렵 구역에 백인들이 침입하자, 1863년부터 항전을 전개했고, 1869년, 마침내 수족의 대추장으로 추대된다. 그리고, 1876년에는 테톤 수 부족연합(Teton Sioux Nation)의 대추장이 되었다.

대추장 캐나다로 피신하다[편집]

1870년대에 접어들면서 백인들은 인디언 영토인 대 수족 보호구역을 점령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인디언들은 검은 언덕(Black Hills) 지역에 사냥감과 땔감이 풍부해 이곳을 식량 창고로 여기며 대대로 신성시해 왔다. 그러나, 거기에서 금이 발견 되자 미 정부는 1874년 남북전쟁 영웅인 커스터 장군의 제 7 기병대를 급파한다.

그러나 1876년, 앉은 소는 태양춤(Sundance) 축제 때 백인 군대에 대한 승리를 보여주는 계시를 받고, 6월 25일 리틀빅혼 전투에서 3,500명밖에 안 되는 수족샤이엔족의 전사들을 지휘해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장군의 지휘하에 있던 미국의 제 7 기병대를 궤멸 시키기에 이른다. 이후에도 수우족은 미국 군대와의 전투에서 여러 차례 승리했으나 결국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는 없었다.

그들의 주요 식량이었던 버펄로는 계속되는 백인들의 침입과 철도 건설로 급속히 사라져갔다. 굶주림 때문에 앉은소를 따랐던 부족민들이 하나 둘 항복하고 보호구역으로 들어가고 계속 되는 학살로 비난이 계속 되자 그는 1877년 5월 추종자들을 이끌고 국경을 넘어, 1881년까지 그들이 거주했던 캐나다로 건너갔다.

캐나다에서 앉은 소는 서로 신뢰하고 의지했던 백인 친구 월쉬 소령 (캐나다의 북서 기마 경찰대 소속)을 만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캐나다 정부는 앉은 소와 그 무리들로 인해 미국과의 외교적인 갈등을 빚게 되자 이들을 내팽개친다. 앉은소를 따르는 무리들은 계속 줄었고 결국 앉은소는 굶주림과 헐벗음 때문에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7월 20일, 몬태나 부포드 요새에서의 항복 후 그는 얼마 동안 전쟁 포로 취급을 받는다. 1883년 이후에는 선바 위 관리소(Standing Rock Agency)로 옮겨졌고, 그 후에 사면을 받는다.

돌아온 앉은소[편집]

관리소에서의 생활을 지루하게 보냈던 앉은 소는 흥행업자 윌리엄 코디를 따라 '버펄로 빌의 와일드 웨스트 쇼(Buffalo Bill Cody's Wild West Show)' 에 나선다. 그는 이 공연을 통해 대대적인 인기를 얻는다. 그는 그의 욕지거리가 섞인 걸한 라코타어는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때 워보카가 창시한 '유령춤'(Ghost Dance)이라는 종교운동이 일어나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인디언들을 사로잡았다. 이 종교는 인디언의 전통 종교와 기독교를 혼합한 것이었다. 유령춤교가 인디언들 사이에 널리 퍼지자 미 당국은 유령춤 확산을 저지하고 나섰다. 선바위 관리인 맥로프린은 이 기회를 이용해 '골치 아픈 반항아' 앉은소를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최후[편집]

1890년 12월 15일. 앉은 소를 체포하기 위해 인디언 경찰과 군인이 파견된다. 앉은 소는 자신의 통나무집에서 인디언 경찰과 맞선다. 양측은 심한 총격전을 벌였고 앉은 소는 인디언 경찰의 총에 맞아 살해당한다.

앉은 소는 백인들과 싸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백인과 평화조약을 맺고 그들이 주는 '선물'을 받으며 연명하느니 차라리 전쟁터에서 죽음을 택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려는 단호한 의지의 표시였다. 전쟁에서의 용맹은 말할 것도 없고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아내와 자식들을 살려주며, 무기가 없는 적에게 무기를 건넨 후에 다시 싸움을 벌이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의 관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사상[편집]

신대륙 발견이란 결국 원주민 침략사의 출발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원주민 라코타족의 용맹한 전투 대추장(영적 카리스마)의 자존심인 앉은 소의 삶은 오늘날까지 약소민족들에게 소중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읽어 보기[편집]

관련 문헌[편집]

  •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 주어주오:미국 인디언 멸망사, 한겨레 출판 (원작 Bury My Heart at Wounded Kn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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