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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라워 호

배중진 2018. 11. 20. 04:02

메이플라워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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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머스 항에 체류하고 있는 메이플라워호의 그림

메이플라워호(Mayflower)는 1620년 잉글랜드 남서부 플리머스에서 신대륙 아메리카 식민지, 현재의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에 ‘필그림 파더스’라고 불리는 ‘청교도’(프로테스탄트) 개척자들을 수송한, 유명한 영국의 선박이다.[1] 당시 이 배의 승객 102명, 승무원은 25에서 30명이었다.

배경[편집]

1527년 헨리 8세의 혼인무효 문제로 촉발된 교황과의 갈등은 1531년 2월 11일 영국 성직자들이 헨리 8세잉글랜드 교회에서의 왕위 지상권을 인정하는 결의를 함으로써 로마 가톨릭과는 결별의 길을 걷게 된다. 교황 클레멘스 7세가 헨리 8세를 파문하자, 1533년 앤 볼린과 재혼을 했고, 1534년 왕위지상령을 공포하여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고, ‘영국 성공회’를 국교로 삼았다. 로마와 결별 이후 종교개혁 운동이 영국으로 들어와 탄력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성상 파괴, 순례의 폐지, 성인숭배 폐지 등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영국 성공회는 개신교가 아니었으며, 헨리 8세가 신봉하는 믿음도 가톨릭 그 자체였다. 1539년 잉글랜드 교회의 6개 신조에서 영국 교회가 가톨릭 교회적인 성격을 유지함을 선언하고 있다.

영국 성공회가 공식적으로 로마 교회에서 분리가 된 것은 1559년이다. 잉글랜드 의회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믿음의 옹호자"(에미리트)로 인식하여 왕위지상령을 채택하고, 반대로 개신교적인 법을 폐지했다. 엘리자베스 1세가 선택한 길은 "중도"(Via Media)로서, 잉글랜드에 혼재하는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교회가 서로를 부정하고 배제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길을 택한 현실적인 정책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는 매우 현명한 군주여서, "억지로 창문을 열수 없는 것처럼, 종교문제도 강제로 해결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다. 또한 매슈 파커 캔터베리 대주교는 《영국 성공회 39개조 신앙고백》을 제정, 영국 성공회의 신앙을 고백했다.

이때부터 영국의 청교도와 영국성공회의 대립이 심화되었다. 1603년 즉위한 제임스 1세는 영국 성공회에 강력한 지지를 보냈고, 또한 왕권신수설을 기리기 위해 국왕의 절대성을 주장했기 때문에, 개신교 여러 교파들로부터 반감을 사게되었지만, 한편 《흠정역 성경》의 출판을 지시하는 등 종교적인 공헌도 컸다.

1620년 청교도필그림 파더스는 결국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으로 향하게 된다.

1625년 즉위한 찰스 1세의 치세에서는 성공회가 스코틀랜드를 교화하려고 했기 때문에 반발하는 사람의 손에 의해 청교도 혁명이 발발하여, 패배한 찰스 1세는 1649년 처형되었다. 그러나 이후 왕정복고명예혁명을 거쳐, 오히려 성공회 주류의 지위는 강화되었다.

메이플라워 호[편집]

메이플라워 호는 프랑스노르웨이, 독일, 스페인 등 유럽 여러 나라와 영국 사이에 화물(주로 포도주)을 운반하는 화물선이었다.[2][3] 1609년부터 1622년까지 크리스토퍼 존스 선장이 지휘하고 있었으며, 1620년의 유명한 대서양 횡단 항해도 그가 지휘했다. 모항은 런던 로드히스이며, 유명한 항해에서 영국으로 돌아온 후, 1622년 3월 존스가 사망하고 1년 뒤인 1623년 로드히스에서 해체되었다. 그 폐기물을 사용하여 버킹엄셔의 죠단즈라는 퀘이커 마을 옆에 메이플라워 반이 지어졌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4]

배의 제원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무게가 180톤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의 상선의 전형적인 크기로 길이 27.4 ~ 33.5m, 폭 약 7.6m로 추정되고 있다.[2]

승무원은 25명 ~ 30명 정도가 탑승하였으며, 필그림 중 한 명이었던, 존 알덴을 포함하여 5명의 이름만 알려져 있다. 윌리엄 브래드퍼드의 메이플라워 호 항해의 유일한 기록에 의하면, 사우스햄튼에서 준직공을 하고 있던 존 알덴은 메이플라워호가 보급을 위해 사우스햄튼에 기항했을 때 고용되었다. 희망에 찬 야심만만한 젊은이로 미국 도착 후 남아 있든, 메이플라워 호와 함께 잉글랜드로 돌아오던 본인의 자유였지만 남아서 결혼을 했다.

신대륙[편집]

메이플라워호는 1620년 11월 21일 (11월 11일), 케이프코드 끝에 도착했다. (1997년 위성사진)

1620년 9월 16일(율리우스력 9월 6일)[5] 존 카버, 윌리엄 브래드퍼드를 비롯한 영국의 청교도 102명이 잉글랜드 남서부 플리머스에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북아메리카)의 플리머스로 떠났다. 선상의 질병으로 시달리면서 66일간의 어려운 항해를 거쳐, 케이프코드 끝의 낚시 바늘 모양의 프로빈스 타운 항구에 닻을 내린 것은 11월 21일(율리우스력 11월 11일)의 일이었다.[1]

이들은 당시 두 번째로 큰 이민단이었다. 원래의 목적지는 허드슨 강 하구의 현재 뉴욕 시 인근으로 당시 영국의 버지니아 정착민의 북쪽 끝의 땅이었다. 버지니아 정착민은 미국 최초의 영국 이주민 땅에서 이들보다 13년 먼저 1607년에 도래하여 건설된 ‘제임스타운’에 정착하였다.[6]

그러나 메이플라워호는 항로를 이탈하여 지연도착을 하였기 때문에 이미 계절은 겨울이어서 케이프코드에 머물면서 월동하게 되었다. 1620년 12월 플리머스에 상륙한 이들은 반수 이상이 추위와 괴혈병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인디언에게서 옥수수 재배를 배워 최초의 혹독한 겨울을 타개해 나갔다. 1621년 3월 31일(율리우스력 3월 21일), 겨울 동안 배안에서 살아남은 승객들은 플리머스 해안까지 이동했고, 〈메이플라워호〉는 그해 4월 15일(율리우스력 4월 5일)에 잉글랜드로 되돌아가게 된다.[1]

메이플라워 서약[편집]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사람들은 매사추세츠에 도착하기 전에 그 배에서 소위 메이플라워 서약을 체결하여, 질서와 안녕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하나의 시민정치체를 만들고 필요한 법률과 공직을 제정하여 이에 복종한다는 것을 서약하였다. 이러한 식민지의회의 설치와 자치체의 형성은 그 뒤에 건설된 다른 식민지에도 도입되었다.[7]

메이플라워 서약은 대략 다음의 내용으로서, 41명이 서명을 하였다.[7][8]

  • 영국왕에 충성을 다하며
  •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할 것을 기약하고
  • 자치사회를 형성하여 질서와 안전을 도모하며
  • 평등한 법률을 만들어 관제를 정한 다음, 여기에 종속할 것을 맹세한다.

상륙 직전에 배 안에서 맺은 ‘메이플라워 서약’은 다수의 자유 의지에 의한 정부의 설립을 결정한 것으로서, 민주주의 정치의 기초가 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이동: Moritz, Bjoern (2010년 11월 11일). “The Pilgrim-Fathers’ Voyage with the 'Mayflower' (history)”. ShipsOnStamps.org. 
  2. 이동: Philbrick, Nathaniel (2006), Mayflower: A Story of Courage, Community, and War, Viking, ISBN 0670037605
  3. 이동 The Mayflower's Crew
  4. 이동 Mayflower after the Pilgrims”. MayflowerHistory.com.[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2011년 1월 21일 확인
  5. 이동 당시 영국에서는 율리우스력을, 유럽 본토에서는 태양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문헌에는 두 날짜 볼 수있다. 여기서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양력 뒤에 율리우스력을 괄호로 표기한다.
  6. 이동 스페인의 신대륙 정착은 영국인 보다 빠른 1565년플로리다 반도에 세인트 오거스틴 정착촌이며, 또한 1610년에는 누에보 멕시코 식민지 (현 뉴멕시코)의 수도 산타페를 각각 건설하였다.
  7. 이동: 윤용희, 윤이화, "미국의 건국정신과 헌법정신의 함의" 사회과학 Vol.17. 경북대학교 사회과학대학, 2005, 5면
  8. 이동 강주진, 미국정당정치사, 서울: 동서문화사, 1983, 10면

참고 문헌[편집]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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