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번디
![]() Theodore Robert Bundy | |
![]() 1978년 7월 27일 경찰에 체포된 번디 | |
출생 | 1946년 11월 24일 버몬트 주 벌링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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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89년 1월 24일 (42세) 플로리다 주 |
국적 | ![]() |
가명 | 크리스 하겐 케네스 미스너 로즐랜드 순경 리처드 버튼 롤프 밀러 |
혐의 | 납치, 살인, 살인미수, 강도, 강간, 탈옥, 시간 |
죄값 | 사형 |
범행동기 | 쾌락살인 |
피해자 수 | 40 |
사망자 수 | 35 |
부상자 수 | 5 |
범행기간 | 1961년 8월 14일 또는 2월 1일-1978년 2월 9일 |
체포일자 | 1975년 8월 16일 1977년 6월 13일 1978년 2월 15일 |
시어도어 로버트 번디(Theodore Robert Bundy, 1946년 11월 24일 ~ 1989년 1월 24일)는 미국의 연쇄살인범, 유괴범, 강간범, 주거침입범으로 1970년대 혹은 그 이전부터 젊은 다수의 여성들을 폭행하고 살인한 네크로필리아이기도 하다. 보통 테드 번디(Ted Bundy) 로 알려져 있으며, 과거에는 '연쇄 살인의 귀공자'로 불리기도 했다.[1]
생애 초반[편집]
유년기[편집]
테드 번디는 1946년 11월 24일 버몬트주 벌링턴 소재 미혼모들을 위한 엘리자베스 룬드 홈에서 엘리너 루이지 코웰에게서 태어났다.[2] 번디의 아버지가 누군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번디의 출생증명서에는 아버지가 세일즈맨이자 공군 예비역인 '로이드 마셜'이라고 되어 있지만, 번디의 어머니인 루이지는 나중에 이름이 '잭 워싱턴'(Jack Worthington)인 것 같은 한 선원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수 년 후 탐정들은 해군이나 상선 인명록에서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의 기록을 찾지 못했다. 가족 일부는 번디의 아버지는 루이지 자신의 아버지인 사뮤엘 코웰(Samuel Cowell)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했지만, 이것과 관련된 증거는 없다.
번디는 3살때까지 외조부모인 사뮤엘 코웰과 엘리너 코웰의 필라델피아 집에서 살았다. 외조부모는 번디를 아들처럼 키웠는데 당시 혼외자로 인한 오명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가족들, 친구들 그리고 심지어 어린 테드까지도 외조부모가 번디의 부모이며 번디의 어머니는 누나라고 들었다. 번디는 차츰 진실을 알게되었지만, 상황을 감안해서 그 사실을 덮었다. 번디는 한 여자친구에게 사촌이 자신을 '서자'라고 부른 뒤에 번디의 출생증명서 사본을 보여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번디는 자서전작가 스티븐 미쇼와 휴 애인스워스[3]에게 출생증명서는 직접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번디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자서전 작가이자 실제 범죄이야기 작가 앤 룰(Ann Rule)은 번디가 버몬트에 있는 진짜 출생 기록이 있다고 알게 된 1969년전까지 출생에 관한 진실을 알지 못했다고 믿었다. 번디는 일생에 걸쳐 자신의 어머니가 번디의 진짜 아버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번디의 진짜 혈통을 찾기 위해 자신을 떠난 것에 대해 분노를 표현했다.
일부 인터뷰에서 번디는 자신의 외조부모에 대해 친근하게 말했고, 룰에게 외조부에 대해서 "닮았고", "존경하며", "의지했다"라고 말했다. 1987년 번디와 다른 가족 일원들은 변호인단에게 사뮤엘 코웰은 압제적으로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이며 흑인, 이탈리아 출신자, 카톨릭 교도, 유대인을 혐오하는 편견이 심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번디의 외조부는 자신의 아내와 가족의 개를 때리고 이웃의 고양이 꼬리를 잡고 휘둘렀다. 한번은 외조부가 루이지의 여동생인 줄리아가 늦잠을 잦다고 계단참 아래로 밀치기도 했다. 외조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한번은 테드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물어봤을 때 몹시나 격분했다. 번디는 자신의 외할머니가 우울증을 위한 전기치료를 정기적으로 받는 소심하고 순종적인 여성으로 묘사했고 죽어서 집을 떠날까봐 두려워했다. 테드는 심지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충격적인 행동을 보이곤 했다. 줄리아는 어느날 잠에서 깼을 때 코웰의 부엌에서 나온 칼들로 둘러싸인 채 줄리아의 3살 짜리 조카가 침대 옆에 서서 웃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1950년에 루이지는 자신의 성(姓)을 코웰에서 넬슨으로 바꿨고, 가족 구성원 다수의 주장으로 필라델피아를 떠나 자신의 아들과 함께 사촌인 앨런과 제인 스콧과 살기 위해 워싱턴주 터코마로 이주했다. 1951년 루이지는 병원 요리사인 조니 컬페퍼 번디를 타코마에 있는 성인 싱글 나이트에서 만났다. 그들은 시간이 지나 결혼을 했고 조니 번디는 정식으로 테드를 입양했다. 조니와 루이지는 그들 사이에서 4명의 자식을 가졌고, 조니는 입양한 테드를 캠핑여행이나 다른 가족 활동에도 함께하려고 했지만 테드는 먼 거리를 유지했다. 테드는 훗날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조니에 대해서 자신의 진짜 아버지가 아니고, "매우 현명하지도 못했고", "많은 돈을 벌지도 못했다"라고 불평했다.
번디는 자신의 전기 작가와 이야기했을 때 타코마 시절에 대해서 서로 다른 회상을 하기도 했다. 미쇼와 애인스워스와 대화했을 때, 번디는 여자 나체 사진을 찾기위해 쓰레기 통을 찔러보면서 이웃집들을 돌아다녔다라고 말했다. 폴리 넬슨과 대화중에는 무척이나 탐정잡지나, 범죄소설 그리고 특히 사체나 불구가 된 사진이 있는 성범죄 관련 실제 범죄 다큐멘터리들을 탐독했다고 말했다. 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번디는 자신은 "절대로 이전에 사실기반의 탐정잡지를 읽은 적이 없고, 생각만으로도 무섭다."라고 주장했다. 미쇼와의 대화에서 번디는 술을 많이 마셨고 여자들이 옷을 벗고 있거나 혹은 전에는 본 적이 없는 것들을 볼 수 있는 가려지지 않는 창문을 찾아 밤늦게까지 지역사회를 돌아다녔다고 했다.
번디는 또한 사회성때문에도 달랐다. 미쇼와 애인스워스에게 말하길 자신은 청소년 때"혼자인 것을 선택"했는데, 그것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번디는 자신은 어떻게 교우관계를 진전시키는 선천적 감각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왜 사람들이 친구가 되려고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라고 번디는 말했고, "사회적 관계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라고도 했다. 그러나 우드로 윌슨 고등학교 시절 급우는 룰에게 번디가 "고등학교에서 잘 알려졌고 인기도 있었다"라고 말했고, "거대한 연못의 중간 크기의 고기"같았다라고 했다.
스키는 번디의 유일하면서 확실한 신체적 여가활동이었는데, 장비를 훔치거나 리프트 티켓을 위조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빠져들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번디는 최소 두 번이나 빈집털이나 차량절도 혐의로 체포되었다. 번디가 18살이 되었을 때 범죄기록에서 세부사항은 지워졌는데, 그것은 워싱턴 주나 대부분의 다른 주들에서도 관행이었다.
대학 시절[편집]
1965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퓨젯 사운드 대학교에서 1년을 보냈고, 1966년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워싱턴주 시애틀에 소재한 워싱턴 대학교으로 전학했다. 1967년 번디는 한 대학교 친구와 사귀게 되었는데, 번디의 전기에서 여러 필명으로 확인된 스테파니 브룩스였다. 1968년 초기에 번디는 학교를 그만두고 최저임금 급여수준의 직업들을 전전했다. 또한 넬슨 록펠러의 대선 캠페인을 위한 시애틀 사무소에서 자원해서 일하기도 했고, 8월에는 록펠러 대표단 자격으로 마이애미에서 있었던 1968년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 후에 얼마되지 않아 브룩스는 번디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캘리포니아에 소재한 그녀의 가족이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녀가 번디는 미성숙하며 야심이 없는 것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정신과의사 도로시 루이스는 훗날 이 위기를 "아마도 번디의 성장과정에서 중요한 시기"였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브룩스의 절교에 무척이나 당황한 나머지 번디는 콜로라도로 떠났고 점점 더 동쪽으로 가면서 알칸사스나 필라델피아에 있는 친척들을 방문하기도 했고 템플 대학교에 한 학기 등록하기도 했다. 룰이 믿기로는, 1969년 초반이 번디가 출생 기록을 담당하는 사무소에 방문해서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확인한 처음이었다.
1969년 가을에 번디는 위싱턴주로 돌아왔는데, 이때 번디는 엘리자베스 클로퍼를 만났는데 유타주 오그던 출신의 이혼녀였다. 클로퍼는 워싱턴 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비서로 일했다. 그들의 관계는 1976년 유타주에서 번디의 첫 번째 투옥때까지 지속된다. 1970년 중반에 번디는 현실에 충실하며 목표에 집중해서 워싱턴 대학교에 다시 등록하는데, 이번에는 전공이 심리학이었다. 번디는 우수한 학생이 되었고, 교수진에게서도 인정받았다. 1971년 번디는 시애틀 자살 핫라인 위기 센터에서 일을 구했는데, 그곳에서 앤 룰을 만나서 같이 일하게 되었다. 룰은 전직 시애틀 경찰관이었고 나중에 번디의 전기들 중에서 최고인 《내 옆의 이방인》(The Stanger beside me)을 쓴 범죄물 작가가 된다. 앤 룰은 그 당시 번디의 성품에 별다른 것을 보지 못했고, 번디를 "친절하며 배려심이 깊고 공감능력도 있었다"라고 묘사했다.
1972년 워싱턴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 번디는 주지사 다니엘 J. 에반스의 재선 캠페인에 합류했다. 대학생인 것처럼 행세하며 에반스의 적수인 전 주지사 앨버트 로젤리니를 따라다니면서 미행했고, 선거 유세 연설을 녹음해서 에반스 캠프팀이 분석하도록 도왔다. 에반스가 재선에 성공한 뒤에 번디는 워싱턴 주 공화당 의장인 로스 데이비스에게 사무보조원으로 고용됐다. 데이비스는 번드를 좋게 회상했고 번디를 "똑똑하며 진취적이며... 그리고 체제 신봉자"라고 묘사했다. 1972년 초기에 번디는 별로 좋지 못한 로스쿨 입학 시험 성적에도 불구하고 퓨젯 사운드 대학교와 유타 대학교 로스쿨 입학허가를 받았다. 번디는 에반스, 데이비스 그리고 다수의 워싱턴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진에게 추천서를 받은 것이 강점이었다.
1973년 여름에 캘리포니아행 공화당 출장기간에 번디는 브룩스와의 관계를 다시 전개했는데, 브룩스는 번디의 두드러진 법률적 정치적 커리어의 정점에 위치한 진중하고 헌신적인 직업인으로서의 변모를 경이로워했다. 번디는 또한 계속해서 다른 여자는 없는 것처럼 클로퍼와 데이트를 했다. 1973년 가을에 번디는 퓨젯 사운드 대학교 로스쿨의 학생이 되었고 브룩스와의 연애로 계속했는데, 브룩스는 번디와 함께 있기 위해 여러번 시애틀로 비행기를 타고 왔다. 그들은 결혼에 대해 의논을 하기도 했는데 한번은 번디가 브룩스를 데이비스에게 자신의 약혼녀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1974년 1월 번디는 갑자기 모든 만남을 중단했는데 브룩스의 전화와 편지에는 답신이 없었다. 한 달 뒤 마침내 번디와 전화통화에 성공한 브룩스는 번디에게 아무 설명없이 갑자기 교제관계를 끝낸 이유를 번디에게 물었다.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번디가 대답하기를 "스테파니, 당신이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브룩스는 다시는 번디와 이야기할 수 없었다. 훗날 번디가 설명하기를 "나는 단지 내가 브룩스와 결혼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길 원했을 뿐이다."라고 말했지만, 브룩스는 1968년 자신이 먼저 번디를 거절한 것에 대한 앙갚음으로 번디가 교제관계를 치밀하게 계획해서 먼저 거절한 것 같다고 결론지었다.
그런다음 번디는 로스쿨 수업에 들어가지 않기 시작했고 4월에는 완전히 그만두었는데 그 당시 젊은 여성들이 태평양 북서부 지역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살인을 시작한 해에 번디는 시애틀 범죄 예방 자문위원회의 부국장이었고 여성들을 위한 성폭력 예방 팜플렛을 작성하기도 했다.
처음 두 개의 연쇄 살인[편집]
워싱턴, 오리건[편집]
번디가 언제부터 혹은 어디서부터 여성들을 죽이기 시작했는가에 대한 일치된 의견은 없다. 번디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말했고 자신의 초기 범죄들에 대한 특정 사항들을 밝히기를 거부했는데, 사형집행을 앞둔 며칠 전에는 후기 범죄들에 대해서는 여러 장의 그림으로 묘사로 고백했음에도 말이다. 번디는 넬슨에게 1969년 뉴저지주 오션 시티에서 처음으로 납치를 시도했지만 1971년 어느 시점에 시애틀에서 살인을 저지르기 전까지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번디는 정신과의사 아트 노만에게 필라델리아에 있는 가족을 만나는 동안인 1969년에 아틀랜틱 시티에서 두 명의 여성을 살해했다고 말했다. 번디는 강력반 형사 로버트 D. 케플에게 1972년 시애틀에서의 한 번의 살인과 1973년 워싱턴주 툼워터 인근에서 한 히치하이커와 연관된 다른 살인에 대해서 암시는 줬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거절했다. 룰과 케플 둘 다 번디가 십대시절부터 살인을 시작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정황증거는 1961년에 번디가 8살 나이의 터코마의 앤 마리 버르를 유괴해서 납치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하나의 혐의이고 번디는 반복해서 부인했다. 번디에 관해 문서화된 최초의 살인은 번디가 27살때인 1974년의 것이다. 자백에 의하면 번디는 필요한 기술들을 완전히 익혀서 범죄현장에서 최소한의 범의학 증거만 남기게 했다.
1974년 1월 4일 자정을 조금 지나 번디는 댄서이자 워싱턴 대학교 학생인 18살 카렌 스팍스의 지하 아파트로 들어갔다. 침대 프레임에서 금속 기둥을 빼내서 자고 있는 여성을 의식이 없을 때까지 폭행한 후에 그 기둥 혹은 금속 검경으로 성적 폭행을 가해서 심한 내부 부상을 야기했다. 카렌은 10일 동안이나 의식이 없었고, 목숨은 건졌지만 평생 장애를 안게 되었다. 2월 1일 이른 아침에 번디는 스키 타는 사람을 위한 아침 라디오 일기예보를 방송하는 워싱턴 대학교 학부생인 린다 앤 힐리의 지하 방으로 침입했다. 린다를 의식이 없을 때까지 폭행한 후, 청바지, 흰 블라우스, 부츠를 입혀서 운반했다.
약 한 달에 한 명 정도로 여자 대학생들이 계속해서 사라졌다. 3월 12일 시애틀에서 남동쪽으로 60 마일(97 km) 떨어진 올림피아 소재 에버그린 주립 대학의 19살 도나 게일 맨슨은 기숙사를 떠나 캠퍼스에 열린 재즈 콘서트장으로 향했지만, 그곳에 도착할 순 없었다. 4월 17일에는 수잔 엘라인 랜코트가 사라졌는데 시애틀 남동쪽 110 마일(180 km) 떨어진 앨랜스버그 소재 센트럴 워싱턴 주립 대학에서의 저녁 어드바이서 모임을 마치고 기숙사로 오는 중이었다. 두 명의 여성 센트럴 워싱턴 대학 학생들이 나중에 누군가를 만났던 사실(한 명은 랜코트가 사라진 밤에, 다른 한 명은 3일 전 밤에)에 대해 알리려고 나섰는데, 한 쪽 팔에 깁스를 한 남자가 한 더미의 책들을 갈색 혹은 탄색 폭스바겐 비틀 자동차에 실어 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5월 6일에는 시애틀에서 남쪽으로 260 마일(420 km) 떨어진 코밸리스 소재 오리건 주립 대학교에서 로베르타 캐슬린 팍스가 기숙사를 떠나 학생 조합 빌딩에 있는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려고 나갔지만,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킹 카운티 보안관 사무소와 시애틀 경찰서의 형사들의 근심은 커져만 갔다. 확실한 물리적 증거가 없었으며 사라진 여성들이 젊고, 매력적이며 긴 머리결을 소유한 백인 대학생이라는 점만 빼면 거의 공통점이 없었다. 6월 1일 22살의 브렌다 캐롤 볼이 시애틀-터고마 국제 공항인근 버리엔에 있는 플레임 여관을 떠난 뒤에 사라졌다. 브렌다가 팔에 깁스를 한 갈색 머리의 남자와 주차장에서 대화하고 있던 것이 마지막 목격이었다. 6월 11일 이른 시간에 워싱턴 대학교 학생 조지안 호킨스가 사라졌는데 남자친구 주거지와 여학생 클럽하우스 사이의 밝게 불이 켜진 길을 걷다가 그랬다. 바로 다음날 아침 3명의 시애틀 살인사건 전담 형사들과 법과학 요원들이 길 전부를 조사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호킨스의 실종이 기사화된 이후, 목격자들이 그 날 밤에 한 남자가 기숙가 인근 도로 뒤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 남자는 목발을 한 상태로 가방을 옮기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한 여성은 그 남자가 자신에게 자신의 밝은 갈색 폭스바겐 비틀 차량으로 가방을 옮기는 데 도와달라고 요청했다고 회상했다.
그 기간 동안, 번디는 올림피아에서 사라진 여성들을 찾는 것과 관련된 정부 조직인 워싱턴 주립 긴급 서비스 부서에서 근무중이었다. 그곳에서 번디는 두 번 이혼했고 두 아이의 엄마인 캐롤 앤 분(Carole Ann Boone)을 만났는데, 6년 뒤 번디의 인생 마지막 장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여성 실종자 6명과 스팍스의 끔찍한 폭행 사건에 관한 기사들이 워싱턴주와 오리건 전역에 신문과 텔레비전으로 보도되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포가 확산되었고 여성 히치하이킹은 급격히 줄었다. 사법당국은 사태해결에 관한 압력을 받게 되었지만 물리적 증거 부족이 그들을 괴롭혔다. 경찰은 기자들에게 약간의 정보도 줄 수가 없었는데 조사에 방해가 될까봐 그런 것이다. 희생자들 사이에서 진전된 공통점들이 발견되었다. 실종은 모두 밤에 작업 중인 건설현장 인근에서 일어났고,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앞둔 일 주일 이내의 시기였다. 모든 피해자는 슬랙스나 청바지를 입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범죄현장에서 깁스나 팔걸이 붕대를 하고 갈색 혹은 탄색 폭스바겐 비틀 차량을 모는 남자가 목격되었다.
태평양 북서부 살인 사건의 마지막은 7월 14일 일요일 시애틀 동쪽 20 마일(32 km) 떨어진 이사쿠아 소재 레이크 새머미시 주립 공원에서 2명의 여성 유괴사건이었다. 5명의 여성 목격자들은 팔걸이 붕대를 한 테니스 운동복을 입고 아마도 캐나다나 영국 같은 밝은 억양의 젊고 매력적인 남자에 관해 묘사했다. 자신을 '테드'라고 소개한 남자가 그들에게 탄색 혹은 갈색의 폭스바겐 비틀 자동차에서 보트를 꺼내는 걸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4명은 거절했지만 한 사람은 그 남자와 함께 자동차까지 갔고, 보트가 없는 것을 보고 도망쳤다. 3명의 추가적인 목격자들은 그 남자가 킹 카운티 소년법정에서 보호관찰관로 일하는 23살의 제니스 앤 오트에게 접근하는 것을 보았는데, 보트 이야기를 하면서 그 남자와 함께 해변을 떠나는 것을 목격했다. 약 4시간 후에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던 19살 데니스 마리 나스런드가 피크닉을 가서 화장실에 가서 돌아오지 못했다. 번디는 스티븐 미쇼에게 말하기를 번디가 나스런드와 함께 돌아갔을 때 오트는 아직 살아 있었다고 했지만 나중에 번디는 루이스와의 인터뷰에서 처형 전날에 관해 언급하면서 그 사실을 부인했다.
킹 카운티 경찰은 마침내 용의자와 자동차에 관한 세부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엘리자베스 클로퍼, 앤 룰, DES 직원 그리고 워싱턴 대학교 심리학 교수 모두 프로파일과 스케치, 자동차를 알아보고 번디가 가능성 있는 용의자라고 보고했다. 하지만 사법당국은 하루에 200개 정도의 제보를 받고 있었고 성인 범죄 경력이 없고 말쑥해 보이는 로스쿨 학생이 가해자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9월 6일 두 명의 거위 사냥꾼이 레이크 새머미시 주립 공원 동쪽으로 2 마일 떨어진 이사쿠아의 측면 도로에서 오트와 나스런드의 유골을 우연히 발견했다. 나중에 그 장소에서 추가적으로 넓적다리 뼈와 몇 개의 척추뼈를 발견했는데 번디는 조지안 호킨스의 것이라고 밝혔다. 6개월 뒤에 그린 리버 커뮤니티 대학 임학 전공 학생들은 테일러 산에서 힐리, 랜코트, 팍스 그리고 볼의 두개골과 하악골을 발견했는데, 그 산은 이사쿠아 바로 동쪽으로 번디가 자주 하이킹을 갔던 곳이다. 맨슨의 유해는 결코 발견하지 못했다.
아이다호, 유타, 콜로라도[편집]
1974년 8월 번디는 유타 대학교 로스쿨에서 두번째 입학허가를 받았고 시애틀의 클로퍼를 떠나 솔트레이크시티로 이주했다. 클로퍼와 자주 전화통화를 하긴 했지만, 번디는 다른 여성들과도 자주 만남을 가졌다. 두번째로 1년차 로스쿨 공부를 했을 때 다른 학생들이 더 똑똑하며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큰 충격을 받았다. 번디는 수업의 내용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에 직면했다. "나 자신에게 정말 큰 실망을 했다."라고 번디는 말했다.
달이 지나자 새로운 일련의 살인이 시작되었는데, 2건은 번디가 사형집행 전에 고백할 때까지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었다. 9월 2일 테드는 아이다호에서 아직까지 미확인된 히치하이커를 강간한 다음 교살했고, 그런 다음 강가 근처에서 시체 잔해를 처리했던지 아니면 다음날 시체를 사진찍고 훼손시켰다. 10월 2일 테드는 솔트레이크시티 외곽 할러데이에서 16살 나이의 낸시 윌콕스를 납치해서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끌고가서 병적인 충동을 충족시기기 위한 목적으로 강간한 후에 놓아줬다. 그러나 번디는 말하기를 소리지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우발적으로 낸시를 교살했다고 말했다. 낸시의 유해는 할러데이 남쪽 200 마일 떨어진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 근처에 묻혔고, 결코 찾을 수 없었다.
각주[편집]
- 이동 ↑ 강호순은 테드 번디형이자 권력지배형 살인마
- 이동 ↑ 역사 속의 인물 - '귀공자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 《매일신문》, 2014년 12월 30일
- 이동 ↑ 《진단명:사이코패스》, P.76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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