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티움 해전
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2012년 12월) |
악티움 해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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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공화정의 이집트 침공의 일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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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로마 공화정 (옥타비아누스 측 군대) |
로마 공화정 (안토니우스 측 군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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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옥타비아누스 |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 7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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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
400척 (전투선) 16,000 보병, 3,000 궁수 |
230척 (전투선) 60척 (이집트 전투선) 30/50 수송선 3,000 보병, 20,000 해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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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규모 | |||||||
사망: 모름 | 사망: 사상자 5,000 이상, 200이상의 함선 나포,격침 |
악티움 해전(기원전 31년)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후의 아우구스투스) 간에 로마의 패권을 두고 겨룬 해전이다.
로마의 경우 해전에 상당히 취약했으며, 악티움 해전의 경우에도 ‘해전을 육전화’한 로마 식의 전투가 벌어졌다. 해전 자체는 별 특징이 없이 옥타비아누스 측의 승리로 끝났다.
평가[편집]
지휘관의 무능함이 전술적 패배와 전략적 패배를 동시에 불러올 수 있다는 교훈을 준 전투로서 우세한 육상전력과 군자금을 보유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의 요청을 받아들여 해전으로 옥타비아누스를 상대했으며, 전투에 돌입한 이후에도 지휘관인 안토니우스는 도망치는 클레오파트라의 뒤를 따라 전투 자체를 내팽개침으로써 패배를 불렀다. 이후에도 건재했던 육상전력을 활용하지 않고 계속 클레오파트라의 뒤를 따른 안토니우스는 결국 자살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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