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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삼

배중진 2017. 11. 18. 13:31

김춘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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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삼
金春三
생애1928년 2월 1일 ~ 2006년 11월 26일 (79세)
출생지일제 강점기 평안남도 덕천군
사망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동구 둔촌동 서울보훈병원
본관안동(安東)
배우자남윤자
자녀슬하 2남 1녀
복무대한민국 육군
복무 기간1950년 ~ 1953년
최종 계급대한민국 육군 상사
지휘분대장
주요 참전한국 전쟁
기타 이력공해추방국민운동중앙본부 총재(1994년)
신한국당 특임행정촉탁위원(1996년)
자유민주연합 특임행정촉탁위원(2001년)

김춘삼(金春三, 1928년 2월 1일 ~ 2006년 11월 26일)은 대한민국 거지 출신의 조직폭력배이며 사회운동가이며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상사이다.

그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평안남도 덕천 출생이다.

생애[편집]

그의 자서전 《나는 왕이로소이다》 에 의하면[1][2] 강원도 철원 외가에서 누이와 살다가 8살 때 경상북도 대구로 개가한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가 걸인 생활을 시작했다. 김두한을 동생으로 삼고 이성순[3] 과 대결에서 승리하고 이정재가 존경하며 도와주었다고 하나, 확인은 되지 않는다.[4]

청년기에는 전국의 걸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지왕’으로 불렸다. 1950대에는 전쟁 고아를 수용하는 합심원을 전국 10여 곳에 세워 부랑아 구제 사업에 나섰다.[5]

그러나 실상은 중부시장 일대에서 조직폭력 행위를 했고,[6] 또한 고아원의 원생들을 착취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7]

한편, 김춘삼은 자녀들을 자신이 운영하던 보육원에서 함께 자라게 했다. 다른 원생들과의 ‘차별대우’는 일절 없었다. 사회적으로는 훌륭한 모습이지만, 정작 자녀들의 가슴에는 원망과 한으로 남았다. “그저 매 맞고 기합받았던 기억뿐입니다.” “너무나 엄격해서 늘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죠.” 자녀들은 아버지를 이렇게 추억했다. 한 아들은 “커 오면서 아버지와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며 “속마음 터놓고 먼저 다가가 얘기하지 못했던 것이 제일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다들 “애틋한 정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눈물이 날 줄 몰랐다”며 오열했다[8]

열다섯 살 어린 부인 남윤자는 1962년 조선대학교 상대 졸업반 시절 거지왕 김춘삼과 운명적으로 만난다. 지프를 타고 조선대 앞을 지나던 김춘삼이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해 강제로 무등산 속 산장으로 데려가 보름만에 돌려보낸다. ―‘납치결혼’을 한 게 사실입니까? “기절시키지 않은 이상 ‘강간’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인연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9]

1969년 5월 대한자활개척단 단장을 하면서 고유 민속 무용을 보급하기 위해 가칭 한국무용단을 창립했다.

1994년 부터는 공해추방국민운동중앙본부를 세워 환경운동에 관심을 가졌으며, 1997년 12월에는 이회창 대통령 후보 지원을 위해 한나라당에 입당하기도 했다.

김춘삼은 2006년 8월 호흡곤란으로 병원에 입원하였으며 폐질환에 패혈증까지 겹치면서 중환자실에서 투병 생활을 해 오다가 그해 11월 26일 서울보훈병원에서 향년 79세로 별세하였고 대전현충원 묘역 사병1-38-24747에 묻혔다.[10]

명예 박사 학위[편집]

작품[편집]

각주[편집]

  1. 이동 김춘삼의 자서전 내용을 간추림
  2. 이동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김춘삼 자서전)
  3. 이동 시라소니홈페이지
  4. 이동 실제로 강원도에서 대구로 어머니를 찾아가는 과정은 김두한이 개성에서 서울로 가는 과정과 비슷하며 김두한과는 10년이라는 시기 차이가 있으며 이정재는 자유당의 비호아래 당대 악명이 높았으며 이성순은 당대 최고의 주먹으로 명성이 높기도 하다.
  5. 이동 “빈민 구제 앞장, '거지왕' 김춘삼 씨 별세”. SBS. 2006년 11월 27일. 2013년 3월 19일에 확인함. 
  6. 이동 1960년 7월 1일자 동아일보
  7. 이동 1959년 6월 25일자 동아일보
  8. 이동 "'거지왕' 김춘삼씨, 자기 자녀도 보육원서 길러" 세계일보 인터넷뉴스부 2006.12.27
  9. 이동 글 이필재 사진 지정훈 (1999년 4월 22일). “봉급쟁이 남편과 살아보는 게 소원이었던 고 김춘삼의 학사출신 아내”. 이코노미스트 484호. 
  10. 이동 대전 현충원 김춘삼 묘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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