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영화관

이강석 (군인)

배중진 2017. 1. 16. 15:21

이강석 (군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Picto infobox military.png
이강석
李康石
이승만가족과이기붕가족.jpg
생애1936년 ~ 1960년 4월 28일 (25세)
출생지일제 강점기 일제강점기 조선 경성부
사망지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경무대
본관전주(全州)
종교개신교
부모이승만(양부)
프란체스카 이부란(양모)
이기붕(생부)
박마리아(생모)
친척이강희(친누나)
이강욱(친남동생)
이봉수(양형)
이인수(양형)
복무대한민국 육군
복무 기간1958년 ~ 1960년
최종 계급대한민국 육군 소위

이강석(李康石, 1936년[1]~ 1960년 4월 28일)은 대한민국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육군 장교로 이기붕의 아들이자 이승만의 양자이다.

생애[원본 편집]

이강석은 1957년 3월 26일, 이승만의 83세 생일에 맞추어 양자로 입적되었다. 부부였던 이승만프란체스카 사이에 소생이 없었다. 이승만에겐 전처인 박승선(朴承善)과의 사이에 이봉수(李鳳秀)란 아들이 있었지만, 미국 체류 중에 병사했으며 이승만은 그 죽은 아들을 늘 잊지 못했다고 한다.

아들에 대한 이승만의 집착과 이기붕의 아들인 이강석에 대한 프란체스카의 애정으로 이강석은 이승만의 83세 생일에 맞춰서 양자로 입적된다.

양자 입적 후 이강석과 관련된 추문 역시 들끓었다. 이강석은 서울대 법대를 다녔는데, 학교에서는 이강석의 ‘부정편입’문제로 말이 많았다. 서울대 법대생들이 동맹휴학에 돌입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자, 이강석은 서울대 법대를 중퇴하고 육군사관학교로 재입학하여 14기로 졸업했으며,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승만의 양자로 입적된 이강석의 권력도 역시 막강했는데, 이를 근거로 대표적인 예가 어느 청년이 이강석을 사칭한 사건인 '가짜 이강석 사건'을 들을 수 있다.

1959년에는 미국 유학, 5월 25일 미국 포트 베닝 (Fort Benning) 보병학교에서 군사 교육을 마치고 귀국했다.[2]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대해 민중들이 항거한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한 지 이틀 뒤인 4월 28일, 경무대에 비서가 쓰던 36호실에 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 박마리아, 그리고 동생 이강욱을 권총으로 쏘고난 뒤, 자신도 자살했다.

가족 관계[원본 편집]

학력[원본 편집]

이강석을 연기한 배우들[원본 편집]

TV 드라마[원본 편집]

같이 보기[원본 편집]

각주[원본 편집]

  1. 이동 [이기붕 일가 자살 기사를 실은 1960년 4월 29일 동아일보 기사에는 이강석의 나이를 24세로 기재하고 있다.]
  2. 이동 e-영상역사관 » 대한뉴스 :클립보기

'TV영화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 제1공화국  (0) 2017.01.17
3·15 부정선거  (0) 2017.01.17
이기붕  (0) 2017.01.16
최인규 (1919년)  (0) 2017.01.16
신정식 (범죄인)  (0) 2017.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