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22
국화/배 중진
배중진
2022. 11. 7. 00:38
국화/배 중진
남들보다 일찍 시작하는 새봄
연로하신 할아버지 젊음을 가꾸신다
작은 터에
몇 가지 꽃을 일찍 심어
냉혹한 겨울엔 아무도 모른다
이른 봄
회심의 미소를 지으시며
물끄러미 담배를 꼬나물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따스한 말 한마디 건네준다
걷지도 않으시고
문밖에 쭈그리고 앉은 모습이 항상 떠오른다
낙엽이 흩어지며
그동안 자란 국화가 화려한 꽃을 피웠다
꽃 위로 떨어진 갈잎이 무성하지만
방긋 웃는 모습이다
어둠이 내리깔리고
새들도 사라진 저녁
발소리 죽여가며 산책하다가
몇 송이 국화의 아름다움과 향기에 취하지만
어르신은 보이지 않는다
담배 냄새도 늦은 가을 하늘 사라졌다